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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기축옥사의 재구성”…『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심양우 기자  |  syw@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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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2  17: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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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천재들이나 선택받은 자들의 삶은 탄탄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봉건시대에 태어난 천재들의 삶은 대개 평탄하지 않고, 대부분 불행하게 살다가 죽었다.

16세기 조선은 우리나라 반만 년 역사상 가장 불확실한 시대였으며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던 시대였다. 당시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태어나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가장 이해되지도 않고 가장 드라마틱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점으로 남아 있는 역사가 1589년 일어난 기축옥사다.

기축옥사는 기축년(1589년)에 생긴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시작으로 연루자를 색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인에 의해 동인들이 탄압을 받은 사건이다. 당시 당파 싸움의 결과로 저마다 다른 파벌들이 다른 시각으로 보았던 기축옥사는 조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난 오늘날까지 많은 의문점을 남긴 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간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상상출판)은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이었던 기축옥사에 얽힌 음모와 정여립과 그 모반사건에 개입돼 죽어간 1000여명의 선비들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동인과 서인을 막론하고 뛰어난 천재로 평가했던 정여립, 서인 측의 송익필, 알성 급제를 했던 이발 그리고 정철. 그들은 당파나 서로 간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공존하기 힘들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축옥사는 16세기 조선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천재 1000여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이 사건의 시작점에 있는 정여립. 정여립은 의혹의 이름이고 아직도 명예가 회복되지 못한 혁명가다. 역사는 정여립이라는 사내를 잊으라고 했고 그는 족보에서도 말끔하게 지워졌다. 그리고 호남 지방은 조선 왕조 내내 반역의 고향으로 낙인찍힌 채 오늘날에 이른다.

당대에 문사철을 고루 갖춘 아름다운 선비라 불렸으면서도 족보에서조차 지워져야 했던 비극적 인물인 정여립. 역사는 어떻게 그를 왜곡해 왔던가? 또 1000여명의 선비를 죽음으로 몰아간 기축옥사의 실체는 무엇인가?

선비들의 개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선조,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유성룡과 이항복, 당리를 위해 정적을 죽이는 정철과 정의로움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최영경, 그런 다툼 속 역모로 목숨을 잃게 된 수많은 이들이 16세기의 역사 속에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지금, 우리는 400여년 동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기축옥사를 여러 각도로 재조명해 역사 발전의 커다란 흐름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그 진실을 만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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