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물리학자와 수학자 탓이라고?”…웨더롤 교수의 이유 있는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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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물리학자와 수학자 탓이라고?”…웨더롤 교수의 이유 있는 반격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9.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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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수학박사들을 직원으로 채용한 제임스 사이먼스의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는 1988년부터 1998년까지 2478.6%라는 경이적인 투자수익률을 기록했다.

버핏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가 역사상 최악의 해를 보낸 2008년에도 이 회사는 80%의 수익률을 올렸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의 전체 직원 중 약 3분의 1은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데 금융 분야가 아니라 사이먼스처럼 물리학이나 수학 또는 통계학 분야의 박사들이다.

MIT의 한 수학자는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야말로 세계 최고의 물리학과이자 수학과”라고 말한다.

성공의 이유는 명확하다. 월스트리트에서 과학에 의존해 경쟁자보다 현명하게 행동한 것이다. 그들은 시장의 광기를 수학적으로 예측하고 돈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를 계산한다. 그리고 이 회사의 직원들은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모형이라는 갑옷에 혹시라도 갈라진 틈은 없는지 끊임없이 살핀다.

루이 바슐리에(Louis Bachelier)가 무작위적 원자의 움직임을 주가에 적용한 것에서부터 피셔 블랙(Fischer Black)과 마이런 숄스(Myron Scholes)의 옵션 가격 결정 공식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 동안 물리학은 금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통계물리학의 새로운 개념을 금융 시장에 처음 적용한 사람은 프랑스 수학자 루이 바슐리에였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미세입자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통계적 법칙인 ‘브라운 운동’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보다 5년이나 앞선 1900년 루이 바실리에는 브라운 운동을 활용해 금융 시장의 규칙적 움직임을 이론적으로 확립했다.

루이 바실리에의 ‘투기 이론’은 주식 시장의 가격변동을 이론화하는 최초의 아이디어였다.

미국 천체물리학자 모리 오즈번(Maury Osborne)도 정규 분포를 이루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수익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프랑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Mandelbrot)는 프랙탈 기하학을 발전시키고 정규 분포와 로그 정규 분포로는 매우 거친 금융 시장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블랙잭 게임에서 카드 카운팅 기법을 사용해 이길 확률을 높일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한 수학자 에드워드 소프(Edward Thorp)와 물리학자 피셔 블랙은 투자자에게 바슐리에와 오즈번과 망델브로가 개발한 도구들을 일상적인 트레이딩에 사용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지구물리학자 디디에 소르네트(Didier Sornette)를 포함해 다른 과학자들은 물리학에서 새로 개발된 개념들을 사용해 블랙-숄스 모형의 바탕을 이루는 무작위 행보와 효율적 시장 가설의 빈틈을 메우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블랙박스 모형을 사용해 국지적이고 단기적인 비효율성을 확인하고, 이것을 최대한 빨리 이용함으로써 이 통찰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한편 소르네트는 거칠게 무작위적인 시장에서는 시장 붕괴 같은 극단적 사건이 지배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망델브로의 관찰을 받아들여, 그러한 파국을 예측하는 게 가능한지를 연구했다. 그는 극단적 사건을 가리키는 ‘드래건 킹’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복잡한 금융 상품과 그것을 만들어낸 물리학자와 수학자를 원흉으로 지목하며 비난했다.

나심 탈레브(Nassim Taleb)는 『블랙 스완』에서 트레이더들이 금융 모형들의 부정적 결과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재앙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도 “공식으로 무장한 괴짜 전문가를 경계하라”고 말했다.

오늘날 금융위기의 원인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실제 세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해하지 못한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 그리고 이익에만 눈이 멀어 이들 퀀트를 제멋대로 날뛰게 방치한 은행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재 물리학자로 알려진 제임스 오언 웨더롤(James Owen Weatherall) 교수는 그의 저서 『돈의 물리학』(비즈니스맵)에서 이를 반박한다.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은 과학자들이 설계한 금융 모형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금융위기의 원인은 시장을 분석하는 툴과 예측 모형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금융 당국과 금융 회사들, 그리고 특정 조건을 벗어나면 작동을 멈추는, 즉 부서지기 쉬운 금융 모형을 세심하게 다루지 못한 사람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금융위기는 과학을 잘못 사용한 대참사의 한 사례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의 역할과 목표는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금융시장 이론을 내놓는 게 아니라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가정을 단순화하면 다른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되는데, 그런 가정이 언제 실패하며 실패할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 모형들에 의존하는 트레이더라면 이러한 의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덧붙인다. “수학적 모형의 실패가 위기를 초래한 일부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아주 정교한 금융 기관 중 일부가 물리학자처럼 사고하지 못한 데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증권거래위원회 그리고 심지어 세계은행 같은 조직은 게임에서 가장 정교한 참가자여야 한다.

만약 이 조직들이 제 역할을 할 능력이 없다면, 이들을 돕기 위해 학제 간 경제 연구에 전념하는 새로운 연구 조직이 필요하다. 세계 경제를 책임진 사람들은 르네상스인 만큼 뛰어나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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