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경치…청량산·지리산은 심신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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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경치…청량산·지리산은 심신수양”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9.17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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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대부가 산에 오른 까닭…신간 『사대부, 산수 유람을 떠나다』

▲ 정선의 <금강내산총도>
유교 사상을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 사대부들은 산수 유람을 중요한 공부의 수단으로 생각했다.

현대인의 여행과 달리 고통사정, 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할 때 비용과 시간적으로 그들에게 유람은 평생의 소원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603년 금강산을 여행한 이정구는 “40년 동안 고대해 왔다”고 했으며 지리산을 여행한 유몽인, 김지백, 이동항 등은 “지리산 유람이 오랜 숙원”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유람을 경험한 사대부들은 다양한 유산기(遊山記)를 비롯한 각종 기행문학을 남겨 놓았다.

신간 『사대부, 산수유람을 떠나다』(한국학중앙연구원)는 현재 남아있는 600여편의 유산기를 비롯한 과거 여행 기록을 통해 조선 사대부들이 유람하면서 견문한 과정과 당시 여행지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북한산, 금강산, 속리산, 청량산, 가야산, 지리산, 백두산 등 7개의 산을 대상으로 개개인이 남긴 기행문 형식의 일기를 통해 평생의 꿈인 유람길에 나선 조선 사대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국의 명산대천을 찾아나선 사대부들의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호연지기를, 어떤 이는 명승지를, 또 어떤 이는 선각자를 닮고자 길을 나섰다.

더러 정약용과 같이 학문적 연구를 목적으로 특정한 지역을 여행한 후 이를 기록한 선비들도 있다.

산수 감상을 무엇보다 중요한 유람의 목적으로 삼았던 이들은 금강산을 찾았다. 또 북한산 여행자 중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금강산 유람을 대신했다.

경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고 하여 작은 금강산, 즉 소금강이라 불리는 속리산 역시 금강산을 대체하는 유람이었다.

 
1654년 속리산을 찾은 남몽뢰는 “금강산을 보지 못한다면 속리산을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고 하며 “대개 산 모양이 모두 기본 골격은 금강산과 다름없고, 특별히 대소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속리산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청량산과 지리산은 심신 수련 등의 목적을 가지고 오르는 이들이 많았고 백두산은 공무 여행으로 방문한 이들이 많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책에는 여행 과정은 물론 준비 과정과 여행 중 숙식, 교통수단과 길, 여행 중 사대부들의 다양한 활동까지 소개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유산(遊山)이 오늘날의 여행이나 등산(登山)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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