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박복(薄福)한 사람만 얽어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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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박복(薄福)한 사람만 얽어맨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03.2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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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⑩

[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⑩

[한정주=역사평론가] 贓濫滿天下(장람만천하)하되 罪拘薄福人(죄구박복인)이로다.

(뇌물과 부정이 천하에 가득하지만 죄는 박복(薄福)한 사람만 구속하는구나.)

법가 사상가 한비자는 자신의 시대, 곧 전국시대 말기를 ‘뇌물과 부정이 천하에 가득한 혼란스러운 세상’으로 보았다. 법가 사상의 핵심 요체는 전국시대의 혼란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법률과 상벌(賞罰)의 원칙을 정해 신분과 계급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엄격한 법 적용과 법집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비자를 비롯한 법가 사상가들은 자신들을 중용한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왕족과 권문세족 등 지배계급의 특권을 폐지하는 변법(變法) 개혁을 과감하게 단행했다. 법률과 상벌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사람들이 한비자와 같은 법가 사상가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명심보감』의 ‘뇌물과 부정이 천하에 가득해도 죄는 박복한 사람만 구속한다’는 말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有權無罪(유권무죄) 無權有罪(무권유죄)’, ‘有錢無罪(유전무죄) 無錢有罪(무전유죄)’, 즉 권력과 돈이 있으면 뇌물과 부정을 저질러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지만 권력과 돈이 없으면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복한 사람이란 다르게 말하면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즉 힘없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법가 사상가들이 주장하고 실천한 변법 개혁은 권력과 재부(財富)로 세상을 무법천지로 만든 왕족과 권문세족 등 지배계급의 권세를 억눌렀고 지배계급의 권세와 무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백성들에게는 일종의 사회적 방패막이었다.

따라서 신분과 계급에 따라 형벌을 차별적으로 적용했던 당시의 기준에서 볼 때 “법은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한비자 등 법가의 견해는 분명 진일보한 사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비자』 <유도(有度)> 편에 실려 있는 한비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오늘날에도 귀 기울여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그 까닭은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지금 우리 사회가 ‘유권무죄 무권유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법이란 신분이 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봐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굽은 모양에 따라 줄을 긋는 먹줄을 굽혀서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법이 집행되면 아무리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신의 변술(辯術)을 이용해 벗어날 수 없고, 아무리 힘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감히 싸워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죄를 벌하는 데 있어서 고관대작이라도 그 죄를 피하지 못하고, 착한 행동에 상을 주는 데 있어서는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도 빼놓지 않는다. 따라서 왕족과 대신들의 허물을 바로잡고 일반 백성들의 사악(邪惡)을 꾸짖는다.

세상의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엉킨 매듭을 풀며 지나치게 넘쳐나는 것은 깎아 줄이고 틀린 것은 바로잡는다.

이렇듯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범과 법도를 통일하는 방법으로 법(法)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관리들을 독려하고 백성을 다스리며, 사악한 사람을 물리치고, 간사한 거짓을 막는 방법으로 형벌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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