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를 헤아리고 살펴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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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를 헤아리고 살펴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하게 하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05.1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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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 고조 유방의 아우인 초원왕(楚元王) 유교(劉交)의 4세손인 유황(왼쪽)과 공자의 제자인 증자.

[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㉕

[한정주=역사평론가] 說苑曰(설원왈) 官怠於宦成(관태어환성)하고 病加於小愈(병가어소유)니라 禍生於懈惰(화생어해타)하고 孝衰於妻子(효쇠어처자)니라 察此四者(찰차사자)하여 愼終如始(신종여시)하라.

(『설원』에서 말하였다. “관리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게을러지고, 병은 조금 나았을 때 깊어진다. 재앙은 게으름에서 생겨나고, 효심은 처자식으로 인해 쇠퇴하게 된다. 이 네 가지를 살펴서 처음처럼 끝까지 신중하게 하라.”)

『설원』은 전한(前漢: 서한) 시대 인물인 유향(劉向)이 중국 고대 왕조로부터 당대 한나라 때까지의 온갖 고사(故事)를 모아 편찬한 방대한 규모의 설화집이다. 유향은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의 아우인 초원왕(楚元王) 유교(劉交)의 4세손으로 왕족이었다.

선제(宣帝) 때 벼슬에 오른 유향은 뛰어난 학식과 탁월한 문장을 모두 갖춘 빼어난 인재였지만 강직한 성품 때문에 간난신고를 겪었다. 특히 원제(元帝) 때에는 당시 권력을 독점‧전횡하고 있던 환관과 외척 세력들에 맞서 싸우다 옥고를 치루고 서민으로 강등되기까지 했다.

이후 비록 성제(成帝) 때 복권되어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올랐지만 여전히 환관과 외척 세력에게 배척당한 탓에 높은 관직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러한 까닭에 유향은 온갖 서적과 문헌을 정리해 편찬하고 고사를 채집해 기록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국책(戰國策)』이나 앞서 여러 차례 소개한 적이 있는 『열녀전(列女傳)』이 바로 유향의 작품이다.

일종의 고대 중국 설화집이라고 할 수 있는 『설원』은 그 문체와 구성이 ‘대화 형식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특징을 갖고 있다.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하고 있는 구절 역시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와 그의 아들 증원(曾元)과 증화(曾華)의 대화 가운데 나오는 내용이다.

증자는 『효경』을 저술할 만큼 공자의 제자 가운데 효도와 효심으로 크게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증자가 아버지 증점을 어떻게 섬기고 봉양했는가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적이 있다.

증자의 효도와 효심을 보고 자란 그의 아들 증원과 증화 역시 효자였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실제 증자가 늙어서 병이 나자 증원은 아버지의 머리를 안고 증화는 아버지의 다리를 안고서 몹시 슬퍼했다고 한다. 이때 증자가 슬퍼하는 두 아들에게 유언처럼 남긴 말의 일부가 바로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증자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나은 현자(賢者) 앞에서는 겸손하고 공손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동문수학한 안자(안회)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안자와 같은 지혜와 재능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느냐. 그러나 비록 지혜와 재능이 없다고 해도 사람은 마땅히 유익(有益)한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만약 이익 때문에 일신을 해치지 않으면 부끄러움과 욕됨이 결코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훈계하면서 첫째 벼슬이 높아지면 게을러지게 된다는 점을 경계하고, 둘째 병은 조금 나아졌을 때 더 깊어진다는 점을 경계하고, 셋째 재앙은 게으름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경계하고, 넷째 효심은 처자식으로 인해 쇠퇴하게 된다는 점을 경계하라고 했다.

이 네 가지를 경계하고 살펴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처럼 끝마무리의 마음가짐 또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증자는 자신의 훈계를 두 아들이 마음 깊이 새기도록 하기 위해 『시경』 <대아>에 실려 있는 ‘탕(蕩)’이라는 제목의 시 구절을 가르쳐주었다.

蕩蕩上帝(탕탕상제 下民之辟(하민지벽)
疾威上帝(질위상제) 其命多辟(기명다벽)
天生烝民(천생증민) 其命匪諶(기명비심)
靡不有初(미불유초) 鮮克有終(선극유종)

크고 넓은 상제(上帝)는 이 백성의 임금이신데
사납고 포악한 상제(上帝)는 그 명령이 사악하고 편벽한가.
하늘이 모든 백성 낳으셨는데 그 명령이 진실 되지 않은 것은
처음에는 잘못하는 이 없지만 끝까지 잘하는 이 드물어서네.

이 시는 어떤 사람이 천명과 민심을 얻어 주나라를 개국한 초기 문왕과 무왕의 빛나는 치적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여왕(厲王)의 폭정에 의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고 탄식하며 읊은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잘 하지만 끝까지 잘한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처음에 잘하는 것처럼 끝까지 잘한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앞서 간관 위징이 당태종에게 말한 ‘유종의 미’와 그 맥락이 같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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