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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 재조명된 조선왕비 44명의 삶…『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
심양우 기자  |  syw@iheadlin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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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9  09: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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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이도경이 그린 신덕왕후(왼쪽)·소헌왕후(가운데)·명성왕후 진영. <사진=갤러리 이즈>

조선왕조에는 모두 27명의 왕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정비와 계비를 비롯해 44명의 왕비가 있었다. 이 가운데에는 세자빈이었지만 본인이 요절했거나 배우자인 세자가 요절해 끝내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훗날 왕비에 추존된 소혜왕후와 신정왕후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들 왕비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특히 이들의 이름도 알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왕비의 부모와 시조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皇后王妃世譜)』에는 왕비의 이름조차 싣지 않았다. 그저 어느 성씨의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정사(正史)에서조차 왕비에 주목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 사회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신간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지성사)는 유교사회의 여필종부(女必從夫)가 아닌 정치인으로 조선왕비에 접근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많고 기구한 삶이나 후궁들과의 갈등으로 질투와 욕심의 화신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정치적 영향권에 벗어나지 못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지닌 엄연한 정치인으로 조선 왕비를 재조명한다.

책에는 순탄하게 왕비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은 물론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난 왕비들 그리고 세자빈이었지만 왕비에는 오르지 못한 채 훗날 추존된 왕비들까지 총 44명의 삶이 모두 기록돼 있다.

숙부의 왕위 찬탈로 쫓겨난 단종(이홍위)의 정비 정순왕후 송씨, 왕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고 쫓겨난 성종(이혈)의 계비 제헌왕후 윤씨, 패륜으로 지목된 남편과 함께 폐위된 연산군(이융)의 정비 거창군부인 신씨, 반정공신들에게 7일 만에 쫓겨난 중종(이역)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 남편과 함께 폐위된 광해군의 정비 문성군부인 류씨 그리고 후궁에서 왕비로 올랐지만 끝내 사약을 받아 죽은 희빈 장씨 등 6명은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난 왕비들이다.

이 가운데 정순왕후 송씨는 200여년 만에, 단경왕후 신씨는 233년만에 복위됐다.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 경종(이윤)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 조선의 마지막 세자빈이자 최초의 황태자비인 순종의 정비 순명효황후 등 3명은 세자빈에 올랐지만 요절해 이후 왕비에 추존된 이들이다.

요절한 세자와 함께 추존돼 왕비에 오른 이들도 있다. 세조(이유)의 맏아들 의경세자(이장·덕종)의 비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 순조(이공)의 맏아들 효명세자(이영·익종)의 비 신정왕후 조씨(조대비) 등 2명이다.

세자빈이나 왕비에는 올랐지만 10대에 요절한 왕후도 있다.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는 세자빈 시절인 17세,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 한씨는 왕비에 오른 지 5년 만인 1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 두 왕비는 자매 사이로 한명회의 딸이다.

또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헌종의 비는 헌종보다 한 살 어린 10세에 왕비로 책봉됐고 4년 뒤 비로소 가례를 올린 효현왕후는 왕비에 오른 지 6년 만인 16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세자빈 재위를 포함해 가장 재위기간이 긴 왕비로는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다. 10세에 왕세손비로 간택돼 38년 동안 왕비 자리를 지켰다.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도 13세에 연잉군과 혼인해 뒤늦은 30세에 왕세제비로 책봉돼 36년 동안 왕실을 지켰지만 실제로 영조와는 53년이란 세월을 함께 해로했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는 32년으로, 영조와 정조·순조 3대에 걸쳐 정비들이 30년을 넘게 왕비 자리를 지켰다.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왕비는 7일 만에 궁궐에서 쫓겨난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다. 폐위된 연산군의 정비는 친정으로 따지면 단경왕후의 고모였고,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왕실 족보로는 손위 동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 왕실에서 쫓겨나는 비운의 왕비들이었다. 단경왕후는 이후 71세까지, 거창군부인은 62세까지 모진 목숨을 이어갔다.

행장류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조선 왕비의 평균 수명은 51세로 왕의 평균 수명인 45세보다 6년을 더 살았다.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의 비 신정왕후는 83세, 숙부에게 왕위와 목숨을 빼앗긴 남편(단종)과 사별한 정순왕후는 82세,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이선)의 비인 혜경궁 홍씨는 81세로 모두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 44명 왕비의 존재감은 왕의 존재감이 클수록 높았다. 이는 사후의 왕릉 조성에서도 나타난다.

   
 

책에서는 세상을 떠난 왕비의 능 조성 과정과 능의 위치도 알 수 있게 그림으로 능을 표현하고 능에 얽힌 이야기도 곁들였다.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는 태종의 앙갚음으로 능이 사대문 밖으로 천장되고 종묘에 신주도 없이 260여년을 떠돌기도 했다. 또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나 안산에 묻힌 문종의 비 현덕왕후는 친정이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자 사후에 폐출돼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고 능은 파헤쳐져 허름한 바닷가로 이장된다. 이후 55년 만에 복위돼 남편 문종 맞은편에 안장되고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기도 했다.

저자는 “새로운 왕이 즉위하게 되면 전(前) 왕은 과거가 되어 버리고 새로 즉위한 왕이 현재이자 미래가 되기 때문에 일정부분 역사가 단절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왕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좀 더 연속된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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