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산(蛟山) 허균② 민중봉기를 꿈꾸다…‘호민론·유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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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산(蛟山) 허균② 민중봉기를 꿈꾸다…‘호민론·유재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4.10.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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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⑱
▲ 허균은 호민(豪民)을 ‘시대적 변고를 만나면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존재’로 보았다. 사진은 영화 ‘군도’의 한 장면.

[한정주=역사평론가] 먼저 허균은 ‘호민론’의 첫 구절에서부터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유학의 민본(民本) 사상보다 진일보한 민권(民權)에 가까운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민본은 백성을 다스림의 대상으로 두고 그들을 위한 정치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애민(愛民)과 위민(爲民)의 사상인데, 허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백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정치사상에서 백성은 수동적(受動的)·피동적(被動的) 객체일 뿐이지만 후자의 정치사상에서 백성은 능동적(能動的) 주체가 된다.

어쨌든 ‘호민론’에서 허균은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의 세 부류로 나누었는데, 이 가운데 호민(豪民)을 ‘시대적 변고를 만나면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존재’로 보았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호랑이나 표범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다. 그런데 위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함부로 업신여기고 모질게 부려먹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인가?

대개 얻거나 이룬 것만 즐거워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구속당하고 순순히 법(法)을 떠받들고 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키는 일이나 하는 백성을 ‘항상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항민(恒民)이라고 한다. 항민(恒民)이란 두렵지 않는 존재다.

가혹하게 빼앗겨 살갗이 벗겨지고 골수가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에서 나오는 곡식이 바닥을 드러내도 도대체 끝이 나지 않는 요구에 따라 갖다 바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위에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백성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원민(怨民)이라고 한다. 원민 역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존재다.

자신의 종적을 푸줏간 속에 감추고 암암리에 다른 마음을 쌓고 천지간(天地間)을 흘겨보다가 다행히 시대적인 변고를 만나면 자신의 소원을 실현하려고 행동하는 백성을 ‘자신의 힘으로 세력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해서 ‘호민(豪民)’이라고 한다. 무릇 호민이란 가장 크게 두려워해야 할 존재다.

호민(豪民)은 나라의 틈을 엿보고 일의 기회를 살피다가 때가 되면 팔뚝을 걷어붙이고 밭두렁 위에서 한 차례 크게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저 원민(怨民)들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함께 도모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소리를 외치게 된다. 저 항민(恒民)들 역시 살길을 찾느라 어쩔 수 없이 호미와 고무래와 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자들을 죽이기에 이른다.

중국 천하를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의 멸망은 진승(陳勝)과 오광(吳廣) 때문이었다. 한(漢)나라의 혼란 또한 황건적(黃巾賊)에서 비롯되었다. 당(唐)나라가 쇠약해지자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가 이 틈을 노려 일어섰고, 마침내 이로 인해 나라가 멸망하였다.

이러한 사변은 모두 백성을 괴롭히고 자기 배만 채운 죄과가 부른 재앙이다. 호민(豪民)은 바로 그와 같은 틈과 기회를 노려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한다.

무릇 하늘이 사목(司牧 : 임금 혹은 관리)을 세운 이유는 백성을 잘 보살피라고 한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 백성 위에 군림하며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 같은 욕심이나 채우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래로 호민(豪民)이 일어나 입은 화란(禍亂)은 당연한 일이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호민론(豪民論)’

▲ 교산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진승과 오광, 황건적, 왕선지와 황소의 예까지 들면서 이들 백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을 괴롭히고 핍박한 나라와 제왕을 몰락하게 한 사건은 당연한 것이지 불행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밑으로부터의 민중봉기나 혁명’을 부추기는 다분히 선동적인(?) 언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허균은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역사와는 다르게 호민(豪民)들이 크게 힘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위에 있는 사람들은 태평스럽게 여기고 백성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백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원망이 멸망 직전에 있던 고려 말엽보다 훨씬 심하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다시 “견훤(甄萱)과 궁예(弓裔) 같은 사람이 나와서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고통 받고 원망하는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그들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경고했다.

‘호민론’은 고통 받고 원망하는 백성이 없도록 정치를 해야 왕실과 사직 그리고 권력과 재물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화법(話法)과 논법(論法)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글의 속뜻은 제왕이나 양반 사대부와 같은 지배 계층이 단지 백성에게 고통을 주고 핍박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면 호민(豪民)이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고 윗자리에 있는 권력자들을 처단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지 반역이 아니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맹자 이후 정도전에 이르기까지 한 왕조를 다른 왕조로 바꾸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유학자는 많았다. 그러나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는 일종의 ‘민중혁명’의 정당성을 언급한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호민론’의 정치철학은 그만큼 급진적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좁고 곤궁한 땅에 백성의 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백성은 모두 나약하고 몹시 도량이 좁아 기절(奇節)이나 협기(俠氣)가 없다. 그러한 이유로 평소 비록 큰 인물이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출현하여 세상을 다스린 일도 없었지만 어지러운 시대를 만나도 호민(豪民)이나 사나운 병사들이 반란을 이끌고 앞장서서 나라의 우환(憂患)이 되는 자 또한 없었다. 그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시대는 고려 때와 같지 않다. 고려 때는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하는데 한도가 있었고, 산천(山川)의 이익을 백성과 더불어 나누어 가졌다. 상업은 자유로이 통행되었고, 공인(工人)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또한 나라의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였으므로, 나라살림에는 여분의 저축이 있었다.

이에 갑작스럽게 큰 전쟁이 일어나고 국가 차원의 상사(喪事)가 발생해도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증가하지 않았다. 고려 말기에 들어와서도 백성의 세 가지 어려움을 오히려 근심해주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은 그렇지 못하다. 얼마 되지 않고 변변하지도 못한 백성들에게 거둔 것으로 신(神)을 섬기고 위에 있는 사람들을 받드는 예절은 중국과 똑같이 하고 있다. 백성들이 5푼(分)의 세금을 내면 관청에 돌아오는 이익은 겨우 1푼(分) 남짓이고 그 나머지는 간사한 자들에게 어지러이 흩어져버린다.

또한 관청의 창고에는 여분의 저축이 없어 일만 생겼다 하면 1년에 두 번씩이나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게다가 지방의 수령들은 이를 빙자하여 더욱 가혹하게 거두어들이는 데 그 탐욕이 끝이 없다. 그러한 이유로 백성의 시름과 원망이 고려 말기보다 더 심하다.

그러나 위에 있는 사람들은 태평스럽게 여기고 두려워할 줄 모르니 우리나라에는 호민(豪民)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불행하게도 견훤(甄萱)과 궁예(弓裔) 같은 사람이 나와서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고통 받고 원망하는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그들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두려워해야 할 형세를 명확하게 알아서 다시 올바르게 바로잡고 고친다면 그런 대로 나라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성소부부고』, ‘호민론’

▲ 허균은 홍길동전에서 율도국을 통해 ‘신분 차별이 없고 만민이 평등한 새로운 나라’를 보여주었다.

‘호민론’에서 백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바꿀 수도 있다는 민권(民權) 사상의 단초를 보여준 허균은 ‘유재론(遺才論)’을 통해서는 모든 사람은 하늘로부터 같은 권리를 부여받아 태어났다는 ‘만민평등(萬民平等)의 사상’을 역설했다.

‘유재론’에 따르면 하늘은 사람을 세상에 내보낼 때 귀한 집안의 태생이라고 해서 재주를 넉넉하게 주고 미천한 집안의 태생이라고 해서 재주를 인색하게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하늘이 평등하게 부여한 재주를 ‘문벌(門閥)로 단속하고 과거(科擧)로 제한하는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준 권리를 침해하는 불의(不義)한 일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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