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한 소파·노트북 대신 바리스타와 담소”…호주식 카페 문화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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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신한 소파·노트북 대신 바리스타와 담소”…호주식 카페 문화 확산
  • 호주=박철성 대기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10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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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성의 호주는 지금]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이민자들이 바꾼 커피 소비

지금 세계 커피 시장은 호주 커피가 핫 이슈다. 또한 ‘커피 강국’ 호주에선 한국인 바리스타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한국인은 커피 관련 각종 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챔피언을 차지했다. 세계 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인도 적지 않다.

4~5년 전부터는 런던·뉴욕 등 주요 도시에서 호주식 카페 문화도 번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뉴욕과 런던의 커피가 사람들을 깨우고 일하게 하는 연료라면 멜버른의 커피는 삶 그 자체”라고 보도했다.

이는 멜버른과 시드니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의 바리스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틈이 없다.

한국처럼 푹신한 소파도 없다. 또 노트북을 켜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손님들은 바리스타와 날씨, 오늘의 기분, 커피 향에 대해 담소를 나눈다.

호주 커피문화가 세계 커피 시장의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호주에 커피 문화를 전파한 건 유럽 이민자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1960년대 이민 붐이 일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멜버른 항구를 통해 카페 문화를 만들었다. 자연과 브런치와 서핑 레저가 결합해 호주의 커피 문화가 만개했다.

호주에 커피를 싣고 온 함대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잠시 정차하는 동안 그 씨앗과 식물을 수집했다. 그러나 번창하지는 못했다.

커피는 수입 물품으로 값이 비싼 식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1939년 커피는 우유와 겨자를 끓여 함께 먹을 수 있는 음료로 기록되었다.

호주 도시 곳곳에 커피숍이 생기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메이커와 커피빈 그라인더, 커피 만드는 방법이 이민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시드니 카페 소유주들은 호주 커피 문화, 특히 현대적인 카페에서 이탈리아와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운영하기 시작한 카페 문화에 대한 많은 증거를 보여준다고 현지인들은 말했다.

역사학자 질리언 아담스 박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 인구는 700만명이었고 전쟁 기간 동안 호주에 100만명의 미군이 머물렀다”면서 “그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빈을 갈아야 했다. 당시 신문들은 커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전쟁 중 차(Tea) 배급 상황에서도 호주인들은 커피를 더 선호했다”고 말한 바 있다.

호주에서 인기 높은 한 커피 전문점.

호주에서는 새로운 커피 머신과 장비 그리고 그라인더들이 줄줄이 소개되고 있다. 1930년대까지 호주 시드니지역에는 필터 커피만 존재했다. 그러다 에스프레소가 소개된 이후 커피 역사가 바뀌었다.

1928년 멜버른의 버크 스트릿 카페 플로렌티노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처음으로 소개됐다. 호주의 멜버른이 커피의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된 배경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1960년대 이민 붐이 일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멜버른 항구를 통해 카페 문화를 만들었다. 자연과 브런치와 서핑 레저가 결합, 호주의 커피 문화가 만개했다.

멜버른은 그리스 이민자들이 늘면서 카페가 번성했다. 지금도 멜버른은 그리스 외 지역에서 가장 많은 그리스인이 사는 도시다.

호주 커피 문화는 다크로스팅하는 유럽식 에스프레소를 중심으로 시작됐고 신선한 원두를 살짝만 볶아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 로스팅으로 진화했다. 품질 좋고 신선한 원두가 멜버른 항구로 들어와 구태여 진하게 태울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갔다가 커피 장인이 돼 돌아온 바리스타와 로스터도 많다. 이들은 모멘토브루어스, 플라스크, 써머레인, 4B, 오지힐 등 서울의 ‘호주 커피 명소’를 창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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