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서산의 가을…개심사·해미읍성·간월암을 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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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서산의 가을…개심사·해미읍성·간월암을 훑다
  • 이경구
  • 승인 2019.11.19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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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⑤ 낮밤 교차하는 해질녘 풍경과 쓸쓸한 늦가을 바람의 낭만
아침 햇살을 받은 은빛 억새가 반갑게 맞아 준다. [사진=이경구]

11월, 산들에 피는 가을꽃과 잡초들은 햇살로 몸을 달구고 말려 겨울을 준비한다. 은빛 마른억새는 서로를 기대어 바람에 사각이고 늦가을 차가운 햇볕 속에 몸을 맡겨 그 풍경 속에 깃들인다.

서산 개심사로 길을 나선다. 서두름이 싫은 사람이 천천히 오르기 편하고 솔밭과 돌계단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적당이 휘어진 길이다. 오솔길을 걸어 돌계단을 오르면 소박한 절집 개심사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야트막한 상왕산에 용트림하는 소나무숲 사이로 맑은 햇살이 내려앉았다. 마음을 열어 깨달음을 얻으라는 개심사의 낡은 단청을 훑으며 청량한 늦가을 바람이 인다.

개심사 일주문. 상왕산 개심사라고 쓰여져 있다. [사진=이경구]

백제 의자왕 시절 지어진 개심사는 작은 절이다. 오솔길을 따라 개심사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네모꼴의 연못이 있고 왼쪽엔 종루가 보인다.

연못의 외나무다리를 건너 해탈문 안으로 들어선다. 상왕산 개심사라는 전서체 현판이 보인다. 부드러움 속에 힘이 살아있는 글씨는 근대를 대표하는 명필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씨다. 상(象)자에서 코끼리 코가 연상된다.

'상'자에서 코끼리 코가 연상된다. [사진=이경구]

범종각·심검당·승방의 기둥 재목으로 서 있는 소나무가 구불구불 휘어져 반듯한 것이 없다. 굽은 나무를 가공하지도 않았고 아무렇게나 쌓은 담과 계단은 자연의 생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자연이 내어준 것에 만족해 이곳에서 자란 굽은 나무가 걸어와 이 땅의 돌과 흙이 빚어낸 있는 그대로의 절집이다.

그래서인지 개심사에 오면 어쩐지 마음이 새로워지고 또 편해진다.

심검당의 구불구불한 기둥과 들보. 있는 그대로의 매력이다. [사진=이경구]

싱싱한 젊음을 자랑하던 노란 은행잎도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뒹굴며 겨울로 향하고 어느새 빈가지로 서있는 나무들도 고운 가을에 마침표를 찍는다.

경내를 한가롭게 둘러보고 서산 해미읍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읍성은 평시엔 행정 중심지이고 비상시엔 방어 기지가 된다.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 세종 때 축성된 20만평의 성이다.

선조 때엔 이순신 장군이 10개월 동안 군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서해안 일대의 고을들을 지키는 수호처였다. 고창읍성·낙안읍성이 있지만 해미읍성은 원형이 잘 보존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빛바랜 그림처럼 색이 빠져버린 잡초밭. [사진=이경구]

동헌으로 가는 길에 옥사(감옥)와 3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성지이다. 조선말 서산·당진에는 천주교 신자가 많았으며 남연군(흥선대원군 의 부친)묘 도굴사건 이후 탄압이 극심해진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 천주교 신자 1000명이 고문과 처형을 당했던 곳이다.

회화나무에 철사로 머래채를 매달아 고문과 처형을 했다 해서 이곳 사람들은 순교자들을 등불(호야)에 빗대 호야나무라 부른다. 밧줄·철사 줄의 흔적과 처형장 비명이 옹이로 깊게 남아 있는 듯하다.

등줄기에 땀이 서린다. 신자를 죽이던 자리개돌도 남아 있다. 자리개질은 사람의 팔과 다리를 묶어 돌에 내리쳐 죽이는 방법이다. 지금도 매년 수만명의 성지 순례 행렬이 이어진다.

수령 350년의 해미읍성 회화나무. [사진=이경구]

슬픈 역사를 간직한 회화나무를 뒤로하고 작은 바위섬 간월암에 도착했다. 물위에 암자 하나만 떠있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절이 섬이요, 섬이 곧 절이다.

작은 암자에서 흘러나오는 독경소리와 파도소리가 어우러져 심신이 저절로 포근해진다. 낙조와 만월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고려말 무학대사가 깨달음을 얻어 창건했다.

만조와 간조 때 암자로 드나드는 방법이 다르다. 물이 빠지면 길이 이어지고 물이 차면 줄배를 이용한다. 보통 6시간마다 바뀐다. 낙조를 품은 바다 감상이 백미다.

간월암. [사진=이경구]

낮과 밤이 교차되는 해질녘 풍경과 쓸쓸한 늦가을 바람이 허공을 지배한다. 초인종을 누른다. 또 다시 범부의 근심은 시작된다.

도심에 지는 석양을 뒤로하고 하루를 보낸다. [사진=이경구]
도심에 지는 석양을 뒤로하고 하루를 보낸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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