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교사들에게 바치는 가슴 저린 헌사…『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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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교사들에게 바치는 가슴 저린 헌사…『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
  • 이성태 기자
  • 승인 2019.12.02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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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손목을 긋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우울증 진단을 받아 정신과 약을 먹는 아이가 있다. 무기력과 나태의 관성을 이겨내지 못해 지각 결석을 되풀이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수업이 지루하다고 필통을 던져 유리창을 깨는 아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교실 한쪽에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교사를 바라보고 있는 소위 우등생들도 있다.

학부모들과 교육당국은 한 술 더 뜬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충고에 다짜고짜 인권위 고발을 운운하며 협박하는가 하면 교양 넘친 얼굴로 교사를 깔보는 속내를 서슴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고등학교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중3 학부모들의 관심은 온통 상위 10% 대학뿐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겪는 아이들의 변화와 학교생활 자체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없다.

교육 당국은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온갖 지침과 규정을 만들어 교사의 손발을 옭아맨다. 지침이 또 다른 규정을 만들고 나아가 규정을 지키기 위한 규정까지 만든다.

이 같은 학교의 민낯과 학생들의 아찔한 모습에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란다. 학교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고 이 아이들을 어떡하냐고 탄식한다. 마치 새삼스러운 일처럼. 그러나 학교도 아이들도 전혀 다른 세상에서 난데없이 던져진 것이 아니다. 학교는 여전히 세상의 거울이자 축소판일 뿐이다.

신간 『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세상의아침)는 학교 안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부딪히며 만든 가지가지 사연과 일상들을 촘촘한 그물로 건져 올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이 책은 단지 교육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침통한 질문을 던진다. 이대로 괜찮은가. 이렇게 내일이 오고 10년이 지나도 되는가 하고.

특히 학교 현실에 대한 고발과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저자 자신의 변화와 성장이다. 비판의 시선을 밖이 아닌 자기 안으로도 갈무리한 저자는 선배와 동료 교사 그리고 아이들을 보면서 달라진다.

아이들의 자활을 위해 사비를 털어 심부름 교육을 하는 J선생님을 보며 학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체벌이 예사롭게 여겨지던 때 회초리 없이도 한편의 마법 같은 수업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배를 보고 또 다른 교육에 눈을 뜬다.

아이들에게서도 배운다. 소녀 가장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동생을 지키는 어린 학생의 집을 다녀온 뒤 공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저자는 “P의 집을 다녀온 이후 나는 아이들 앞에서 습관처럼 하던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고 고백한다.

깐깐하고 원칙적이기만 하던 저자는 또 두 아들의 질풍노도를 겪으며 성장기 아이들의 일탈과 좌충우돌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진다. ‘아이들은 크면서 백번도 더 변한다’고 믿게 된 학부모의 넉넉한 시선까지 얻게 된 것이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교육의 토대로 삼은 것도 놀랍다. 저자는 ‘교사에게 버릴 경험은 없다’며 삶 전체로 아이들을 만난다.

저자의 이 같은 성장 못지않게 빛나는 이 책의 백미는 의미심장한 교육실험에 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티칭’을 버리고 ‘코칭’으로 수업을 바꾼 것이다. 저자는 50분 수업을 10분이나 15분으로 나눠 과제를 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한 후 확인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재구성하고 교재도 새로 만들었다.

능력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옆에 가서 개인지도를 하는 방법으로 참여도도 높였다. 빨리 해결할 수 있는 학생들은 늦은 학생을 도와주게 했다. 교육이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미친 교육으로 퇴행하던 20여 년 전의 일이다. 이후 저자의 교실에서 자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급우들 간의 소통과 교감의 시간을 만드는 강강술래 수업, 일명 ‘워킹’ 수업도 주목을 끈다. 자는 아이들을 깨우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시도가 뜻밖의 소통 기적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이 같은 교육 실험과 다른 동료 교사들의 치열한 노력을 보며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엄마와의 갈등으로 자퇴를 결심하는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교사, 지각 결석을 줄이기 위한 동료 교사들이 추진한 ‘행복 프로젝트’을 보면서 그래도 학교가 희망이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성실한 기록으로 학교의 민낯을 드러낸 정직한 보고서이자 비판서이면서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선생님들을 보며 변화한 저자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언론의 과장과 왜곡이 만든 무형의 ‘벽관’에 갇혀 신음하면서도 선생이면서 상담사이고 심리 치료사이자 행정가였던 동료 교사들에게 바치는 가슴 저린 헌사다.

학교가 병들고 죽어간다면 세상은 그보다 빨리 병들고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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