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는 달도 머무르다 가는 봉우리 황간 월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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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는 달도 머무르다 가는 봉우리 황간 월류봉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19.12.26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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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⑧ 능선 끝 정각 월류정 ‘화룡점정’
‘달이 능선을 따라 물 흐르듯 기운다’는 월류봉 전경. [사진=이경구]

조선 중기의 문신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는 월류봉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이렇게 그려 내었다.

해 저문 빈 강에 저녁 안개 자욱하고
찬 달이 고요히 떠올라 더욱 어여뻐라
동쪽 봉우리는 삼천 길 옥처럼 서서
맑은 달빛 잡아놓아 밤마다 밝네

서울을 빠져 경부고속도로를 질러가다 보면 서울과 부산의 중간 위치에서 영동군 황간IC에 다다른다. 충북의 가장 남쪽인 영동군엔 백화산, 지장산, 황악산, 민주지산, 각호산, 천태산 등 수려한 산들이 즐비하다.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 삼도봉, 민주지산에서 북상한 산맥이 황간으로 치솟은 봉우리가 월류봉(400.7m)이다. 황간면 원촌리에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월류봉이 자리하고 있다.

첩첩한 산중 마을 황간 풍경은 낮은 지붕들이 작지만 소박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인 탓인가. 어머니의 가슴으로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듯 편안함이 다가온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시절 이곳 강변에 펼쳐진 모래 벌에 소풍을 다녀오셨던 추억과 회상을 말씀하시곤 했다.

월류봉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있고 주차장에서 보면 부채처럼 펼쳐져 뻗어 내린다. 능선 끝에 있는 작은 정각 월류정은 마지막 한 점 화룡점정이다.

월류봉과 어우러진 초강천의 맑은 물줄기. [사진=이경구]

월류봉이 한천과 몸을 섞는 끝자락에 월류정이 있다. 그 아래로 경상북도 상주에서 출발한 석천(石川)이 황간에서 초강천(草江川)과 어우러져 월류봉을 지나 부딪침과 미끄러짐을 반복하며 맑고 깨끗한 금강으로 흘러든다.

이 비경 앞에서는 달(月)도 머무르다 가는 봉우리라 하여 이름 그대로 월류봉(月留峰)이다.

월류봉과 강변 절벽에 솟아 있는 월류정을 바라보며 기막힌 절경에 젖어든 뒤 월류봉 산행지도에 그려진 산봉우리와 하천 줄기를 주의 깊게 보고 주차장-한천정사-징검다리-월류1봉·2봉·3봉-월류4봉-월류5봉(정상)-전망봉-강변길-월류봉 주차장까지 4km 원점회기 산행을 시작한다.

자연이 빚은 한반도 지형이 뚜렷하다. [사진=이경구]

주차장 옆 우암 송시열 선생이 기거했던 한천정사 쪽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발길을 독려해 본다. 눈을 가득 채우는 풍경에 마음도 상쾌하며 휴식 같은 시간이 달다.

한천정사는 조선조 학자이자 정치 사상계의 거장 우암 송시열(1607~1689년) 선생이 한천서원을 지어 강학을 하며 당시 아침마다 월류봉 중턱의 샘까지 오르내렸던 집이다.

징검다리를 건너 산기슭으로 들어서자 만만찮은 된비알길이 벌떡 일어선다. 월류봉은 깎아지른 절벽. 다행히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성큼성큼 올라간다.

천천히 걸어 산행을 시작한지 25분 만에 1봉에 도착한다. 호흡이 자연스럽게 커지며 하늘 높은 곳에서 보이는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하고 여유롭다. 작은 능선 끝 바람 잘 드나드는 곳에 월류정이 아담하게 자리하며 초강천과 산행 들머리가 보이는 경관이 뛰어나다.

2봉을 향해 걷는다. 1봉을 지나면 조금 안부로 내려섰다가 2봉으로 오르막을 오르는데 그렇게 높지는 않아 조금 힘들다 싶을 정도에 봉우리에 닿는다. 발아래 초강천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 지형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 자연이 빚은 오묘한 작품으로 볼수록 신기하다.

전망대에서 본 산그리메. [사진=이경구]

길지 않은 바윗길을 올라 3봉에 오른다. 잎이 진 겨울산에 온갖 풍파 다 겪으며 허공을 파고든 암봉이 장대하다.

깎아지른 절벽의 기암 틈에도 어김없이 독야청청 늙은 소나무가 거꾸로 보는 험한 세상을 관조하는 듯 지긋이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삼각점이 있는 4봉을 거쳐 5봉에 올랐다. 5봉이 정상봉이지만 정상석이 없다.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간다. 백두대간 산자락 아래로 펼쳐지는 높낮이가 다른 산 지붕들을 감상하며 한줄기 겨울바람에 근심걱정 실어 보내니 무념무상 눈과 마음이 고요해진다. 큰 추위 없는 포근한 겨울이지만 흐른 땀이 식으니 알싸한 겨울 등산의 묘미가 느껴진다.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부드럽게 겹쳐져 있다. [사진=이경구]

등산로를 타고 하산길 발걸음을 옮긴다. 내리막이 다소 가팔라 신발 속 발가락들이 바짝 목을 감추지만 나무계단이 있어 수월하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하산길에 있는 전망대부터는 육산의 흙이어서 보행이 편안하다. 멀리 보이는 물굽이의 거대한 곡선, 언덕과 산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봉들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골골이 이어진 계곡 아래 일렁이는 초강천이 유유히 흐르며 징검다리를 건너 물속의 월류봉 산 그림자 정갈한 물소리 들으며 징검다리를 건너 원점회기 산행을 마친다.

초강천 징검다리를 건너면 산길은 끝난다. [사진=이경구]

산행을 통해 오르막내리막 곧은 길 굽은 길 너덜 길 등으로 이어짐이 인생길을 살피게 한다. 순탄한 길이 흔할까마는 숨 가쁜 시간을 걷고 오르면 그것이 디딤돌이 되지 않겠는가. 산행과 꼭 닮은 인생길에 묵묵한 친구 산길이 있어 행복하다.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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