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대하는 마음과 부모님 대하는 마음이 어찌 그렇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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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대하는 마음과 부모님 대하는 마음이 어찌 그렇게 다른가”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1.2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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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22강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팔반가(八反歌) 여덟 수①

[한정주=역사평론가] 幼兒或詈我(유아혹리아)면 我心覺懽喜(아심각환희)하고 父母嗔怒我(부모진노아)하면 我心反不甘(아심반불감)이라 一喜懽一不甘(일희환일불감)하니 待兒待父心何懸(대아대부심하현)고 勸君今日逢親怒(권군금일봉친노)어든 也應將親作兒看(야응장친작아간)하라.

(어린 자식이 혹 내게 대들면 내 마음에 기쁨을 느낄 테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화를 내면 내 마음은 도리어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네. 한쪽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한쪽은 내 마음을 언짢게 하니 자식을 대하는 마음과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 어찌 이토록 다른가. 그대에게 권하니 오늘부터라도 부모님이 화를 내시면 마땅히 자식이 화를 낼 때처럼 바꾸어서 부모님을 바라보라.)

부모와 자식 사이는 천륜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와 자식이 부모를 대할 때는 차이가 있다.

즉 부모가 자식을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일은 인위적인 노력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 반면 자식이 부모에게 정성을 다해 효도하는 것은-상대적으로-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보다는 인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가의 모든 경전을 뒤적여보더라도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은 가득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왜일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구태여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아도 그렇게 하지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팔반가(八反歌)’는 인간의 무의식 속 심리 상태를 잘 이해하고 시가로 옮겨 묘사한 한 편의 수작(秀作)이라고 할 만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을 대하는 마음과 부모를 대하는 마음이 왜 다른지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별반 신경 써서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의당 장성해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나서도 그렇게 할 뿐이다.

그러면서 자식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과 부모를 대하는 자신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자식을 대하는 것과 부모를 대하는 마음은 다른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은 자신의 행위조차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속이며 사는 위선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 ‘팔반가’의 지은이는 자식을 대하는 마음과 부모를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차이를 알아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게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가. ‘팔반가’의 지은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곧 부모를 대하는 마음과 자식을 대하는 마음을 바꾸어 생각해보라고 주문한다.

그 한 가지 사례로 여기에서는 부모가 화를 낼 때는 자식이 화를 낼 때 자신의 마음이 어떻고 또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살피고 헤아린 다음 처신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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