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하게 넓고 멀어 끝없이 조망되는 정상 풍경…민주지산(岷周之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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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게 넓고 멀어 끝없이 조망되는 정상 풍경…민주지산(岷周之山)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20.02.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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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⑭ ‘한가롭지 말라’는 물한(勿閑)계곡의 낙엽송 숲길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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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에 걸린 붉은 해의 기운이 스며들며 장엄한 아침이 밝아온다. 뿌려진 햇살에 산길은 이내 밝아진다. 산길에는 겨울의 햇살이 제법 온기를 더해 쏟아지며 흰 눈들이 듬성듬성 남아 있다.

맵고 맑은 산소 알갱이에 산객도 산의 한 부분이 된다. 거대한 골을 이루며 이어지는 대간길은 내륙 깊숙한 추풍령에서 내려 숨을 고르다가 이내 웅장한 민주지산의 얼굴이 되어 솟아오른다.

해발 1241.7m의 민주지산(岷周之山)은 충청북도·경상북도·전라북도가 만나는 도계를 나눈다. 꼭지점 위치를 차지하는 산이 민주지산 삼도봉이다.

석기봉·각호산·삼도봉을 거느린 명산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원시림을 가진 산으로 알려진다.

산의 70% 가량이 필자의 고향 영동군에 있어 마음이 더욱 각별하다.

얼핏 민주지산이라는 산 이름으로 혹여 민주주의(民主主義)와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사실 아무런 관련은 없다. 삼도봉에서 각호산까지 산세가 민두름(밋밋)해서 ‘민두름산’이라 불리다 한자 표기 과정에서 산맥 ‘민(岷)’ 두루 ‘주(周)’ 민주지산으로 붙였다는 속설이 일반적이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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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200고지의 고산들이 둘러싸고 깊은 골을 만드니 수정처럼 맑은 청수(淸水)가 흐르는 물한(勿閑)계곡이다. ‘한가롭지 말라’는 물한(勿閑)이란 이름에서 자연이 사람에게 주는 교훈을 느낀다.

물한계곡은 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차 깊이감과 신비감을 더해준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늘씬한 몸매의 낙엽송 숲길을 걷노라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다. 산길이 완만해 민주지산을 찾는 산객들 대부분이 물한계곡을 들머리로 삼는다.

등산코스는 물한계곡주차장~황룡사~제1삼거리~음주암폭포~삼마골재~삼도봉~석기봉~민주지산 정상~쪽새골 삼거리~물한계곡 주차장 원점회기 등 약 13km로 7시간 소요가 예상된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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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5분 거리에 황룡사가 있고 황룡사 오른쪽 옆으로 작은 계곡의 구름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등산 행로가 시작된다. 심산유곡 계곡길을 따라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며 숲을 바라보는 눈길이 바빠질 무렵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온다. “삼도봉 3.8km 석기봉 5.2km”.

민주지산 7.3km 곧게 뻗은 전나무 숲 등반로는 평탄한 오르막 코스로 어렵지 않다. 황룡사에서 삼도봉을 향해 약 1시간 오르니 삼마재골 이정표가 보인다. 영동군 상촌면과 김천을 이어주던 옛 재로 장꾼들이 넘나들던 고개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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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가빠진 숨을 고르고 첫 번째 목적지 삼도봉으로 향한다. 가풀막 산길엔 계단이 설치돼 있어 그나마 수월하다. 이윽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삼도봉(1176m)이 안부를 내어준다.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에 위치한다.

삼도봉은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에 비할 바 없는 선경의 지대로 환희심이 충만된다. 정상 데크 중앙에 대화합 표지석은 세 마리의 용이 지구를 떠받치고 삼도의 화합을 바라며 기념하는 듯 하다. 널직한 나무데크에서 휴식과 삼도를 두루 굽어보며 몇 장의 기록사진을 남기고 석기봉(1242m)으로 향한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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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에서 석기봉, 민주지산으로 가는 길은 도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길이며 주봉인 민주지산과 백두대간 삼도봉 사이의 경유지 같은 산이다.

석기봉으로 가는 산길엔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며 정상으로 오르는 바위지대에는 로프를 잡고 오르는 된비알 구간이 몇 군데 있어 제법 짜릿한 스릴도 맛본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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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우회길로 오르다 보면 정상 바로 아래 바위에 양각된 삼두마애불상이 석기봉을 지켜주고 있다. 불상 밑으로 바위에서 떨어지는 석간수를 마실 수 있는 샘이 있다.

삼도봉에서 석기봉까지 약40분 소요됐다. 석기봉 정상에서 대간 전체의 조망은 장쾌하다. 구비구비 이어진 산줄기들이 우람하게 펼쳐지고 깊은 골짜기는 사방으로 뻗어있어 산객의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하다. 백설을 껴안고 있는 겨울산행의 맛이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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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봉 휘어지는 암능길을 조심조심 내려와 1시간30분을 걸으면 민주지산(1241.7m) 정상이다. 사방이 트인 능선길은 완만하며 주변의 연봉들을 두루 굽어볼 수 있다.

쪽새골 갈림길에 닿으며 정상까지는 100m 거리. 능선 더 높은 능선 비탈길 돌길 꼬부랑길을 걸어 드디어 민주지산 정상을 찍는다. 우뚝한 기상에 경배하며 예상을 넘어선 환희감에 가슴을 맞닿아 본다.

망무애반(茫無崖畔). 아득하게 넓고 멀어 끝이 없고 덕유산, 황학산, 깃대봉, 가야산 등이 조망되는 민주지산 정상이다. 깊은 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여 골바람이 짙은 안개를 몰고 온다. 조망을 가리고 보여줌을 반복한다. 다녀본 산 가운데 정상 조망은 단연 최고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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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 정상 바로 아래엔 무인대피소가 있다. 1998년 4월1일 5공수여단 소속 특전사 대원 6명이 혹한기 천리행군 중 강풍과 폭설에 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아픔이 있는 산이다. 사고 지점에 무인대피소가 세워진 이유다. 생때같은 대원들의 순직이 산객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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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뒤로하고 100m 직전 쪽새길로 하산길로 접어든다. 이어 조금 완만한 내리막인 듯 하더니 갑자기 급경사 돌길의 내리막 시작이다.

발목까지 쌓여있는 눈은 어제 내린 비로 물기를 잔뜩 머금어 슬러시가 되어 있다. 많은 산길을 걸어 봤지만 이번 산행의 슬러시 눈길이 가장 미끄러운 경험이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미끄러져 그만 벌렁 나자빠지고 곤두박질쳐 스틱까지 부러지며 발목 부상을 입고 말았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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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새골 방향 민주지산 지름길은 돌맹이 많은 너덜길. 접질린 발목에서 전해오는 아련한 통증이 고통스러웠다. 절룩거리며 기다시피 걸어 차가 들어올 수 있는 임도까지 내려와 119 구급차에 실려 물한계곡 주차장으로 하산을 마쳤다.

빨리 가려는 자에겐 그만큼의 고통이 따른다는 진리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지만 산길의 위험을 새삼 깨닫는다.

어둠이 서서히 산에 스미고 무뚝뚝한 겨울나무들도 어둠 뒤로 숨는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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