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일상을 뒤틀어 놓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짓눌린 비정상적인 일상을 만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초유의 사태에 너와 나 서로가 멀어지고 있다.
봄을 잊은 서글프고 허망한 마음을 달래는 세심(洗心)의 기회를 갖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산행에 나섰다.
차는 중앙고속도로 단양을 향해 시원하게 질주해 제비산(제비봉: 721m)의 들머리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장회나루에 도착했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안긴 제비봉은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능선이 제비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회나루에서 정상까지 2.3km, 약 2시간10분 거리이며 왕복 4시간 산행 코스다.
정상까지의 등로는 바위와 돌이 많은 데다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도 수시로 나타나니채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작부터 급경사의 나무계단.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경고 같기도 하고 급한 마음 일찌감치 접으라는 충고 같기도 한 계단을 한 걸음씩 천천히 오른다.
깎아지른 암벽을 따라 오르니 놀랄 풍경이 불쑥 나타난다. 시야가 탁 트여 충주호의 물길이 나타나고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준다.
굽이굽이 쉼 없이 흐르고 감돌아 잔잔한 충주호의 물결이 제비봉과 맞닿은 풍경은 온 세상을 수용하는 선경이다.
솔향 진한 오르막을 헐떡이며 오른다. 한 고개를 넘었다고 마음 놓으니 다시 오르막이 나온다. 휘어진 길을 따라 더 깊이 몸을 들인다. 오를수록 아스라이 펼쳐진 충주호의 수면이 평온한 정경으로 다가온다.
하늘은 멀고 나무도 풀도 호수도 숨 죽은 듯 고요하다. 명주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춤추듯 술렁거린다. 등산로 바위틈에 등 굽은 소나무가 독야청청 우람하고 비틀리며 꺾여 자란 제 빛깔의 구부린 등이 하늘을 떠받친 모습이 신비롭다.
등골에는 땀이 흐르고 목이 마르지만 가쁜 호흡을 다듬는다. 등짐을 내려놓고 목을 축이며
잠시 산세를 꼼꼼히 둘러보고 마음과 눈에 차곡차곡 담아본다.
제비봉 등산로는 곳곳이 훌륭한 전망대다. 한 치라도 더 멀리 보고 싶은 욕심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최고의 그림은 단연 이 정상에 걸려있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서는 순간 입이 절로 쩍 벌어진다. 충주호 푸른 물줄기가 한눈에 조망되고 티 없이 맑은 풍경에 눈이 깨끗해진다. 맑은 바람에 또 가슴 밑바닥 꼭꼭 숨겨진 콩알 같은 생채기까지 절로 아문다.
정상 데크 위에 돗자리를 펴고 배낭 안에 넣어온 점심식사로 가볍게 속을 채워 원기를 보충한다.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후 원점 회기 산행을 이어간다.
하산길은 오르막에 비해 완만하고 긴 구간 동안 계속 충주호가 조망되며 충주호 뒤편으로 산그리메의 멋진 모습이 펼쳐진다. 산과 호수가 아늑하게 펼쳐진 제비봉은 자연의 명작(名作)이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 이 말을 실감하며 잠시 세상 시름 잊고 충주호의 물처럼 유유자적 걸었던 행복한 산행이다.
하산 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사랑하셨던 4대째 90년 이어오는 단양 대강막걸리 한 사발은 소백산 어린 솔잎을 갈아 넣었다니 풍미가 한층 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