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시를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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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시를 써라”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4.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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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⑬ 조촌 사는 일가 사람을 만나 함께 읊다

닭 잡고 밥 짓느라 부엌에서 도란도란          鷄黍廚人語
울타리에 저녁 안개 서려 으스름 짙어가네.     籬煙薄暮深
반쯤 누런 버들잎은 시들어 쳐지고             半黃楊委髮
대추는 새빨갛게 익었네.                       純赤棗呈心
냇물은 빨리 흘러 그물치기 어렵고             溪急妨提綱
산바람은 차가워 이불 자주 끌어안네.          嵐寒慣擁衾
목동(牧童)이 돌아올 적 뿔 두드리는 소리 나니 牧歸聽扣角
이것이 바로 틀림없는 가을소리네.             端的是商音
『아정유고 3』 (재번역)

세시(歲時)에 흰떡을 쳐서 만들고 썰어서 떡국을 만든다. 추위와 더위에 잘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견디기 때문에 그 정결함을 취한다. 세상 풍속에서는 이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는 억지로 그 이름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떡’이라는 뜻에서 ‘첨세병(添歲餠)’이라 하였다. 이에 시를 지어 ‘첨세병’을 노래하였다.

천만 번 절구에 쳐서 눈빛이 동글동글 千杵萬椎雪色團
저 신선 부엌의 금단과 비슷하네      也能仙竈比金丹
해마다 나이 더 먹는 것 몹시 미워    偏憎歲歲添新齒
슬프구나!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네  怊悵吾今不欲餐
『영처시고 1』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박지원은 당대의 시인들에게 “조선의 시를 쓰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조선의 시를 쓰려면 반드시 “이덕무의 시를 보라”고 외쳤다.

박지원이 볼 때 당시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찬미하는 시는 단지 중국의 옛 시를 답습하거나 모방하는 시에 불과할 뿐 조선의 시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적 불명의 시였다.

반면 박지원은 당시 사람들이 ‘비루하다’, ‘거칠고 서툴다’, ‘자질구레하고 보잘 것 없다’고 혹평한 이덕무의 시는 참된 조선의 시라고 극찬했다.

이덕무의 시를 혹평한 대표적인 사람이 자패(子佩)라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루하구나. 이덕무가 지은 시야말로. 옛사람의 시를 배웠건만 그 시와 비슷한 점을 볼 수 없구나. 이미 털끝만치도 비슷하지 않은데 어찌 그 소리가 비슷하겠는가. 거칠고 서툰 사람의 비루함에 안주하고 오늘날의 자질구레하고 보잘것없는 풍속과 유행을 즐겨 읊는다. 지금의 시일 뿐 옛 시는 아니다.”

박지원은 자패의 혹평을 비판하면서 이덕무의 시가 진실로 볼 만한 까닭은 중국의 옛 시와 비슷하거나 닮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이덕무의 시는 중국의 옛 시가 읊은 시적 대상과 소재가 아닌 ‘지금의 자질구레하고 보잘것없는 풍속과 유행’을 시적 대상과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에 참된 조선의 시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덕무의 시는 오늘날 조선의 풍속과 유행을 읊고 있기 때문에 만약 공자가 살아 돌아와 다시 시의 경전인 『시경(詩經)』을 편찬하는 작업을 한다면 반드시 조선의 시 가운데에서는 이덕무의 시를 채록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덕무의 시를 통해서만 조선의 산천과 풍속과 기후, 조선 백성의 성정, 조선의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시와 닮은 혹은 비슷한 시를 무엇 때문에 구태여 조선에서 구하겠는가. ‘중국적인 것’과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그 시는 별반 가치와 의미가 없는 가짜 시이자 죽은 시가 된다.

반면 ‘조선적인 것’을 담을수록 그 시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가치와 독특한 의미를 지닌 진짜 시이자 살아있는 시가 된다. 조선의 시를 써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덕무의 시를 혹평한 자패는 유득공의 숙부 유금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유금은 이덕무의 시를 훗날 청나라에 가져가서 반정균에게 “그의 시는 평범한 길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최고의 비평을 받아온 장본인이다.

한때는 이덕무의 시가 중국의 옛 시를 닮지 않았다고 비방하고 비난했던 사람이 이덕무의 시야말로 참된 조선의 시라고 찬미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당시 이름 없는 시인에 불과했던 이덕무의 시를 중국(청나라)에까지 가져가서 비평을 받으려고 했겠는가.

중국과는 다른 조선의 시를 청나라 지식인들에게 소개하고 비평을 청할 만큼 이덕무의 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옛것에 익숙한 사람에게 새로운 것은 거부감과 반감을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새로운 것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순간 거부감과 반감은 호감과 수용 그리고 찬사로 뒤바뀐다.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도전하고, 개척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세간(世間)의 거부감과 반감을 두려워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참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안목과 식견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 그 가치와 의미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설령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이 무에 그리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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