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이덕무고, 이덕무가 자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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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이덕무고, 이덕무가 자연이 되다”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5.1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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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⑱ 자연을 묘사하는 법

가을바람을 읊다

가을바람 소슬하고 기러기 남녘으로 떠나네 秋風瑟瑟兮雁南征
하늘가 바라보니 강물은 맑고 깨끗하네     瞻望天涯兮水澄淸
풀벌레 찌르르 창에 들어 울어대니         草虫喓喓兮入戶鳴
내 마음 구슬퍼서 문득 성곽을 노니네      我心無聊兮薄遊城
『영처시고 1』 (재번역)

한강 배 가운데에서

영롱한 햇살 물가에 퍼지는데         日脚玲瓏水步舒
넓고 푸른 봄 물결 빈 배만 두둥실    春波綠闊素舲虛
투명한 물속 잔거품 불어내는         潛吹細沫空明裏
바늘꼬리 가시수염 두 치 되는 물고기 針尾芒鬚二寸魚
『아정유고 1』 (재번역)

총수

꽃가지 너울너울 돌 그림자 둥글둥글          飄帶花鬗石影圓
맑은 샘물 젖줄마냥 방울방울 떨어지네        靈泉如乳滴涓涓
덩굴 휘어잡고 높고 먼 봉우리 헤아리며       攀蘿若測峯高遠
원숭이 팔뚝 백 개 연이어 놓은 모습 상상하네 恰想垂猿百臂聯
『아정유고 2』 (재번역한 것임)

[한정주=역사평론가] 박제가가 지은 <형암선생시집 서문>을 보면 자연을 묘사하는 법을 읽을 수 있다.

형암은 이덕무의 호 중 하나다. 이덕무의 시를 본 어떤 사람이 도대체 이 시는 어떤 의미를 취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제가는 끝을 알 수 없이 아득한 산천, 맑음을 머금은 잔잔한 물, 깨끗하게 떠 있는 외로운 구름, 남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끊어질 듯 말 듯 쓸쓸하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모두 이덕무의 시라고 대답해준다.

이덕무에게는 자연의 모든 것이 시적 대상이자 시적 존재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덕무는 어떻게 자연 풍경과 현상을 포착하고 터득해 시에 담았을까.

자연과 이덕무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자연과 이덕무는 이 경계에 의해 나누어진다. 이 경계를 시적 언어로 돌파하는 것이 자연을 묘사하는 이덕무의 시적 방법이다.

이덕무는 자연과 자신이 일치하는 어떤 지점에서 포착하고 터득한 풍경과 현상을 시적 언어로 묘사한다. 그 순간 이덕무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자연이 이덕무가 되고, 이덕무가 자연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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