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는 경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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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는 경계가 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20.05.2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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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㉑ 길 가는 도중에

저 멀리 손톱만 한 말, 콩알만 한 사람 가고 또 가고  寸馬豆人歷歷
단풍 든 하늘 대추 익은 땅 넓고도 멀구나             楓天棗地茫茫
어지러운 나무 구륵죽(句勒竹)의 형세이고             亂樹句勒竹勢
담백한 구름 도라면(兜羅綿)의 빛이네                 澹雲兜羅綿光
『아정유고 3』

[한정주=역사평론가] 시에는 경계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덕무는 이렇게 말한다.

“글에는 경계가 있는가. 먼 곳의 물은 파도가 없고, 먼 곳의 산은 나무가 없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은 눈이 없고, 말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듣는 사람은 팔짱만 끼고 있다는 묘사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시선은 경계가 있다. 시선의 경계 가장자리에 있는 자연과 사물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형상화할 수밖에 없다.

먼 곳의 바다는 파도가 보이지 않고, 먼 곳의 산은 나무가 보이지 않고, 먼 곳의 사람은 눈·코·귀·입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먼 곳의 바다는 파도를 묘사하지 않고, 먼 곳의 산은 나무를 묘사하지 않고, 먼 곳의 사람은 눈·코·귀·입을 묘사하지 않는다. 단지 형체와 형상만을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시의 묘사는 그림의 묘사와 닮았다. 손톱만 하게 그 형체만 묘사해도 말인 줄 알고, 콩알만 하게 그 형상만 묘사해도 사람인 줄 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시선은 경계에 머물지만 또한 그 경계 너머까지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선의 경계는 존재하지만 사고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적 묘사 역시 시선의 경계에 머물지 않고 사고의 경계로까지 확장한다. 그곳에 시적 상상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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