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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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의 미학
  • 한정주 역사평론
  • 승인 2020.06.1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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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㉔ 정월 초이렛날 이서구·유득공·박제가에게 주다
강세황(姜世晃)의 사군자 4폭 중 매화도(梅花圖).
강세황(姜世晃)의 사군자 4폭 중 매화도(梅花圖).

곱고 예쁜 한 그루 매화                     姸姸一株梅
정녕 저 사람 방에 있구나                   宛在伊人室
봄 등불 이끼 어린 가지에 비치니           春燈映苔槎
고운 칡베 펴놓고 갈필로 그려보네          縐蹙馳渴筆
창 사이 쥐꼬리 모양 끝가지                 窓間鼠尾梢
그림과 비교하니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네  比影毫無失
듬성듬성 매화 꽃잎 술잔 안으로 떨어지고   疏蕊落靑樽
그윽한 향기 살그머니 책 속으로 스며드네   暗香飄素袟
두건 바로 쓰고 꽃 든 채 빙그레 웃으니      整巾拈花笑
심오한 이야기 밤 깊어 끝이 나네            玄談丙夜畢
고상한 회포 꽃 머금어 깨끗하고             咀芳高懷淡
진실한 뜻 가득 꽃향기 맡네                  嗅馨眞意密
이것으로 우리 마음 드러내니                 持此證襟期
꽃에서 벗 한 사람 더 얻었네                 花中添友一
『아정유고 3』 (재번역)

섣달 그믐날 석여에게 주다

해마다 만나는 섣달 그믐날                  年年逢除日
오늘 밤 다시 섣달 그믐날                   除日又今宵
세월은 어찌 이리 빠른지                    日月何太駛
슬프구나! 스스로 즐겁지 않네               惆悵自無聊
귀신 모시는 사당의 북소리 둥둥             祠神鼓鼕鼕
제사 올리는 부엌 등불 빛 아득하네          祭竈燈迢迢
매화도 한 시절이라                          梅花亦幾時
남은 꽃잎 사람 향해 나부끼네               殘蘂向人飄
마음 함께 한 서너 벗들                      三四同心子
산 넘어 서로서로 찾아 나섰네               隔岡相與邀
손잡고 마당 사이 거닐면서                   携手步庭際
새벽녘 북두자리 헤아리네                    五更占斗杓
늙어갈수록 착한 덕을 닦아야지              老大修令德
젊고 고운 얼굴 시든다고 한탄하지 말라      莫歎朱顔凋
『영처시고 2』 (재번역한 것임)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는 매화를 정말로 사랑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매화를 사랑했을까. 매화에 미친 바보라는 뜻의 ‘매탕(梅宕)’이라는 호를 사용했고 ‘윤회매(輪回梅)’라고 이름 붙인 밀랍 인조 매화를 직접 창안하고 손수 만들었을 정도다.

왜 이덕무는 미쳤다는 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매화에 탐닉했던 것일까. 고결하면서도 은은하고, 우아하면서도 담백하고, 도도하면서도 소박하고, 고고하면서도 친근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벚꽃은 지나치게 아름답고, 지나치게 우아하고, 지나치게 화려하다.

지나치게 아름다우면 오히려 추악하고, 지나치게 우아하면 오히려 경박하고, 지나치게 화려하면 오히려 천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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