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어린아이의 시
상태바
아홉 살 어린아이의 시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6.29 0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덕무 詩의 온도]㉗ 누구나 시를 지을 수 있고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갑신년(甲申年: 1764년)에 어떤 사람이 강 가운데 사는 아홉 살 어린아이의 시를 가져와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비 올 기미 봄기운 절정으로 치닫고         雨氣冥冥春欲盡
끝없는 물가 꽃밭 석양이 비껴 걸렸네       芳洲無限夕陽斜
사시사철 푸른 고목 쓸쓸히 꾀꼬리 울고     陰陰古木空黃鳥
또렷한 푸른 산 단지 몇 채의 민가뿐        歷歷靑山但數家

그 시의 필법(筆法) 역시 수려하고 걸출했다.
『청비록 1』 (재번역)

양근 고을의 나무꾼

양근(陽根) 고을에 사는 나무꾼 봉운(鳳雲) 정포는 여씨(呂氏)라는 사람의 노비이다. 그런데 그 얼굴 생김새가 예스럽고 괴이하였다. 어렸을 적에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시인의 바탕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일찍이 관청에서 배급해주는 쌀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관청에서는 장부에 그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면서 쌀을 배급해주지 않았다. 서글프고 우울한 마음에 관청의 누각에 기댄 채로 시 한 편을 읊었다.

산새는 나무꾼의 성(姓) 알지 못하고                   山禽不識樵夫姓
관청의 장부엔 별 볼 일 없는 사람 이름 없구나         郡籍曾無野客名
태창(太倉: 광흥창)의 곡식 한 톨도 나누기 어려운데    一粒難分太倉
높다란 누각에 홀로 기대 있자니 저녁연기 피어오르네   高樓獨倚暮煙生

그 시가 마침내 입에서 입으로 흘러 전파되다가 군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군수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불러서 시험 삼아 ‘휘영청 밝은 달 아래에서 빨래하며(浣紗明月下)’라는 시제(時題)를 주고 시를 짓게 하였다. 정포는 즉석에서 시를 지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흰 돌은 반짝반짝 달은 비단 비추고                     白石磷磷月照紗
들녘 하늘 물 같고 물은 모래 같네                      野天如水水如沙
살짝 젖은 연꽃 겨우 색깔 구분하고                     輕沾◯藕纔分色
어지럽게 겹친 노을 무늬 미처 꽃이 못 되었구나         亂疊霞紋未作花
교인(鮫人: 인어)의 소반에 진주구슬 눈물 아니고        不是鮫盤珠結淚
때마침 매미 날개에 이슬 맺힌 꽃이네                   秪應蟬翼露凝華
동쪽 개울 친구 불러 대접하니                          招招且待東溪伴
버드나무 드리운 집 베틀 놀려 베 다 짰구나             織罷春機垂柳家

군수는 크게 놀라 즉시 쌀을 주라고 명령하였다. 마침내 그 명성이 널리 퍼져 사대부와 더불어 시를 수작(酬酌)하고 화답하였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또한 ‘동호 절구(東湖絶句)’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동호의 봄 물빛 쪽빛처럼 푸르고                    東湖春水碧如藍
백조 두세 마리 또렷하게 보이네.                   白鳥分明見兩三
어기영차 노 젓는 한 목소리에 날아가 버린 뒤       柔櫓一聲歸去後
해질녘 산빛만 쓸쓸히 물속 가득하구나              夕陽山色滿空潭

이 시 역시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외우곤 하였다.
『청비록 3』 (재번역)

동양위의 노비

동양위가 거처하는 궁택(宮宅)의 노비 역시 시를 잘 지었다.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떨어진 나뭇잎 바람 앞 속삭이고                 落葉風前語
차가운 꽃 비 온 뒤 훌쩍이네                    寒花雨後啼
오늘 밤 상사몽(相思夢)으로 지새우는데          相思今夜夢
작은 다락 서쪽 달빛 하얗구나                   月白小樓西

최기남은 호가 귀곡(龜谷)으로 동양위의 궁노(宮奴)다. 그 역시 시집이 있다. ‘한식날 길을 가던 중에(寒食途中)’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샛바람 이슬비 기다란 둑 지나가니              東風小雨過長堤
풀빛 자욱한 안개 눈앞 흐릿해지네              草色和煙望欲迷
한식날 북망산 아래 길에서                     寒食北邙山下路
들까마귀 날다 백양나무 앉아 훌쩍이네          野烏飛上白楊啼

동양위 부자(父子)와 형제(兄弟) 그리고 조손(祖孫)은 문채와 풍채가 모두 뛰어나 재상에 올라도 부끄럽지 않을 만하였다. 그의 노비들 역시 시를 잘 지어서 꽃과 새를 거리낌 없이 읊조렸다.
『청비록 2』 (재번역)

기생 시인

추향(秋香)과 취선(翠仙)이라는 기생도 역시 시를 잘 지었다. 취선의 호는 설죽(雪竹)이다. 그녀의 시 ‘백마강에서 옛일을 회고하다(白馬江懷古)’는 다음과 같다.

저물녘 고란사 닿아                           晩泊皐蘭寺
서풍에 홀로 누각에 기대네                    西風獨倚樓
용은 간데없고 강만 만고(萬古)를 흐르고       龍亡江萬古
꽃 떨어지고 달만 천추(千秋)를 비추네         花落月千秋

‘봄단장(春粧)’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봄단장 급하게 끝내고 거문고에 기대니         春粧催罷倚焦桐
주렴에 붉은 햇살 은근히 차오르네             珠箔輕盈日上紅
밤안개 짙어 아침 이슬 흠뻑 적시니            香霧夜多朝露重
동쪽 담장 아래 해당화 눈물 흘리네            海棠花泣小墻東
『청비록 2』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사람들은 대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를 짓는 방법과 법칙이 따로 있고, 그 방법과 법칙을 배우고 익혀야만 시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덕무는 시는 누구나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시다. 시인은 그러한 시적 존재를 시적 언어로 묘사하는 사람일 뿐이다.

단지 영처의 시학(詩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꾸미거나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자신의 감정, 마음, 뜻, 기운, 생각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드러내 묘사하면 된다.

세상 모든 것이 시적 존재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시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덕무는 좋은 시를 고르고 모을 때 나이의 많고 적음, 신분의 높고 낮음, 남성과 여성의 성별 차이를 따지지 않았다. 좋은 시는 어린아이도 지을 수 있고, 나무꾼도 지을 수 있고, 노비도 지을 수 있고, 여성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시를 지을 수 있고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이덕무의 견해를 그의 벗 유득공은 이렇게 표현했다.

“시는 누구나 지을 수 있다. 민간의 부녀자나 어린아이라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의 자질과 재능을 지니고 있다. 시는 배우고 익혀서 짓기도 하지만 구태여 배우고 익히지 않아도 지을 수 있다. 배우고 익혀서 지은 시 중에도 좋은 시가 있고 나쁜 시가 있듯이 배우거나 익히지 않고 지은 시 가운데에도 좋은 시가 있고 나쁜 시가 있다.

여기에는 시를 볼 때 편견이나 차별 없이 읽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