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잠자리 그림자 희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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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그림자 희롱하며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7.0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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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㉘ 소설은 구조의 문학, 시는 직관과 감각의 문학

담장에 드리운 그림자 도자기 잔금인 듯              墻紋細肖哥窯坼
흐트러진 댓잎마냥 개자(个字) 모양 푸르구나         篁葉紛披个字靑
우물가 가을볕 속 그림자 아른아른                   井畔秋陽生影纈
붉은 허리 하늘하늘 야윈 저 고추잠자리              紅腰婀娜瘦蜻蜓
『아정유고 1』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소설은 일정한 짜임새를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구조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등의 구조가 대표적인 경우다.

반면 시는 직관과 감각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과 감흥이 일어나는 대로 혹은 기분과 흥취와 느낌에 따라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구상(構想)이 중요하고, 시는 시상(詩想)이 중요하다. 이때 구상이 소설적 짜임새라고 한다면, 시상은 시적 착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담장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가 드리운 그림자를 보는 순간 이덕무는 도자기 무늬를 떠올린다.

이 순간 이덕무의 시적 감흥과 착상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무늬에 견주어 고추잠자리 그림자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때 탄생한 시구가 “담장에 드리운 그림자 도자기 잔금인 듯”이다.

또한 그림자에서 시선을 옮겨 담장에 앉아 있는 고추잠자리를 보는 순간 고추잠자리의 ‘개(个)’ 자 형상은 흐트러진 댓잎 모양과 오버랩되어 포착된다.

그 순간 이덕무의 시적 흥취와 착상은 “흐트러진 댓잎마냥 개(个) 자 모양 푸르구나”라는 시구로 태어난다.

시적 대상이 작자(作者)의 시적 흥취, 시적 착상, 시적 언어, 시적 묘사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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