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교는 자가 계통(季通)이다. 원암(院巖) 정내교(鄭來僑)의 아우이다. 『한천집(寒泉集)』에 실려 있는 그의 시들은 자못 청신(淸新)하고 기발하며 빼어나다. 그 시는 아래와 같다.
꽃 너머 실바람 은자(隱者)의 안석(案席)에 불어오고 花外微風來隱几
버드나무 근처 저녁 해 책에 비춰 글을 읽네 柳邊斜日照看書
첩첩산중엔 사람만 홀로 머무르고 亂山人獨宿
넓고 큰 바다엔 달만 외로이 걸려 있네 滄海月孤懸
노란 국화꽃 그림자 밭두렁에 달맞이할 때 黃花影畔時招月
흐르는 개울 소리 속에 앉아 글을 읽네 流水聲中坐讀書
높고 넓은 하늘 기러기 달빛 가로질러 날고 天長雁橫月
차가운 밤 개울 소리만 산 울리네 寒夜水鳴山
여기저기 산 대지에 가득하고 縱橫山滿地
쓸쓸히 내리는 비 강을 울리네 蕭瑟雨鳴江
‘양촌을 출발하며(發楊村)’라는 제목의 절구(絶句)는 다음과 같다.
단풍잎 깊이 물든 들녘 다듬이질 소리 들려오고 紅葉深中野杵聲
차가운 개울가 나지막한 울타리 비껴있네 天寒水流短籬橫
사립문 앞 당도하자 이미 해질녘 柴門下馬斜陽裏
산국화(山菊花) 활짝 피어 절로 선명하네 山菊花開先自明
이러한 시는 모두 곱고 예뻐 사람들에게 전할 만하다.
『청비록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숙종과 영조 연간에 활동한 문인 정민교의 시에 대한 이덕무의 감상평이다.
시를 감상하는 법은 다양하다. 시적 언어를 중심으로 감상하는 법도 있고, 시적 해석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방법도 있고, 시인의 생각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방법도 있고, 시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감상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 시의 풍격(風格)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방법이 좋다. 풍격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의 분위기와 느낌이고, 좀 더 어렵게 말하자면 시의 품격과 격조 정도가 된다.
한시 감상에서는 이 풍격을 보통 시품(詩品)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시를 감상하는 것이 좋은 까닭은 하나는 머리 아프게 해석하지 않으면서 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시에 대한 나만의 느낌을 만끽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웅장하다, 탁 트였다, 맑다, 신선하다, 기이하다, 오묘하다, 우아하다, 쓸쓸하다, 적막하다, 차갑다, 따뜻하다, 그림 같다, 막힘이 없다, 세밀하다, 담백하다, 힘이 넘친다, 예스럽다, 고상하다, 예쁘다, 치밀하다, 자연스럽다, 뜻이 강하다, 인위적이다, 거칠다, 소박하다, 화려하다, 순수하다, 선명하다, 섬세하다, 독창적이다, 세련되다, 촌스럽다, 곱다, 울분이 가득하다 등의 감상법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이덕무 역시 이러한 시 감상법을 매우 즐겼다. 한시 비평집인 『청비록』에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청신(淸新: 맑고 신선하다), 생신(生新: 생생하고 새롭다), 기묘(奇妙: 기이하고 오묘하다), 정교(精巧: 정밀하고 교묘하다), 정아(精雅: 정확하고 우아하다), 생동(生動: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등이 그렇다.
그 밖에 웅혼(雄渾: 웅장하고 탁 트여 막힘이 없다), 충담(沖淡: 따뜻하고 담박하다), 초탈(超脫: 세속을 초월했다), 경건(勁健: 굳세고 단단하다), 기려(綺麗: 곱고 아름답다), 호방(豪放: 호탕하고 호쾌하다), 소야(疏野: 거칠고 꾸밈이 없다), 비개(悲慨: 비통하고 개탄하다), 표일(飄逸: 자유롭고 거리낌이 없다), 광달(曠達: 광활하고 활달하다) 등의 시품 역시 풍격으로 시를 감상하는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