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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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초월한 우정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0.09.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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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㊺ 이조원을 생각하며
북송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박지원이 청나라 연행 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풍경 중 하나는 바로 선박과 수레의 활발한 이용이었다.
북송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박지원이 청나라 연행 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풍경 중 하나는 바로 선박과 수레의 활발한 이용이었다.

매화령 밖 오양성 고을                               梅花嶺外五羊天
가는 곳마다 아가씨 악부 전하네                      到處珠娘樂府傳
진귀하고 소중한 성교(星橋)의 평론 매우 좋고        珍重星橋評隲好
시정(詩情) 맑고 고와 노을처럼 아름답네              詩情淸麗斷霞姸
『아정유고 3』 (재번역)

반정균을 생각하며

한림원의 명망 높은 그대, 사마상여와 매승 같은 인물       翰苑名流卽馬枚
작고 변변치 못한 이 사람 함께 술 마시니 얼마나 행복한지  鯫生何幸共啣盃
이제부터 조선엔 문운(文運)이 열렸구나                     從今海左開文運
예로부터 강남엔 특이한 인재 많이 나왔지                   自古江南出異才
흰 구름 시 소리 가치 더해 돌아오고                        白雲詩聲增價返
푸른 구름 의로운 기운 친구 맺어 찾아오네                  靑雲氣義結交來
죽는 날까지 서로 잊지 말기 소원하니                       願言沒齒無相忘
현안(玄晏)의 아름다운 글 지어준다 승낙하오               玄晏佳篇一諾裁
『아정유고 3』 (재번역한 것임)

이정원을 생각하며

처음 만나도 옛 친구 같고                     新知如舊要
잠시 만나도 좋은 인연이네                    暫遇亦機緣
옥루산 가을 구름 아득한데                    玉壘秋雲杳
청구(조선) 새벽달 곱게 비추네                靑丘曉月姸
외로운 회포 만 리 밖 잇닿아                  孤懷連萬里
한 번 이별 천 년 지난 듯                     一別抵千年
진귀하고 소중한 ‘청장관기(靑莊館記)’      珍重靑莊記
대대로 간직하여 보배로 전하려네             留爲世寶傳
『아정유고 3』 (재번역)

이기원을 생각하며

헌칠한 용모 이중자(李仲子)                    軒然李仲子
웃고 떠드는 사이 참된 정 보이네               談笑見情眞
육기(陸機)와 육운(陸雲) 당세를 울리는데       二陸鳴當世
삼허(사천)에선 특이한 인물 나왔구나           參墟降異人
회풍 불어 높은 물결 일고                       槐風搖酒浪
장맛비 내려 책 먼지 잠재우네                   梅雨宿書塵
그때 일 물속 달 건진 것만 같아                 卽事如撈月
하늘 동쪽 홀로 정신만 슬프구나                 天東獨愴神
『아정유고 3』 (재번역)

당낙우를 생각하며

평생의 진실 저버리지 않아                     平生眞不負
해내(海內)의 이름 높은 선비들과 어울렸네     海內托名流
맑고 고상한 해학, 반갑게 맞아 주고            雅謔開靑眼
마음으로 맺은 교제, 백발에 이르렀네           神交到白頭
계림(조선)의 책장사 돌아오니                  鷄林書賈返
연시(중국)의 술꾼과 노니네                    燕市酒人遊
훌륭한 자제 작은 시렁 아래에서                驥子荳棚下
아마도 문고(文稿) 정리하고 있겠지             知應玄草收
『아정유고 3』 (재번역)

[한정주 고전연구가] 이덕무는 1778년(정조 2년) 나이 37세 때 절친 박제가와 함께 평생의 숙원이던 중국(청나라) 여행을 떠났다. 백탑파 혹은 북학파 사람 가운데 세 번째 청나라 여행이었다.

첫 번째 여행은 홍대용이고, 두 번째 여행은 유금이다. 홍대용과 유금에 이은 이덕무와 박제가의 세 번째 여행은 앞선 두 사람의 중국 여행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유익했다.

홍대용과 유금은 아무런 도움 없이 직접 청나라 지식인들을 찾아 나서야 했지만 이덕무와 박제가는 홍대용과 유금이 앞서 단단하게 맺어놓은 교제 관계를 바탕 삼아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조원, 반정균, 이정원, 이기원, 당낙우 등은 이덕무와 박제가가 중국 여행 때 직접 만나 교제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청나라 지식인들이다. 이들 청나라 지식인과 백탑파 혹은 북학파 지식인들의 교제와 우정이 18세기 조선의 새로운 문예사조 또는 지식혁신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나라의 최신 문예사조와 지식·정보는 물론 서양의 지식과 정보는 대개 이들과의 교제와 교류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조선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박지원의 명저 『열하일기』 역시 홍대용⟶유금⟶이덕무와 박제가의 중국 여행과 청나라 지식인과의 교제와 우정의 토대 위에서 탄생했다. 박지원은 훗날 자신의 중국 여행을 이렇게 회고했다.

“비 내리는 지붕 아래, 눈 오는 처마 밑에서 연구하고 술기운이 거나하고 등 심지가 가물거릴 때까지 맞장구를 치면서 토론하던 내용을 한번 눈으로 확인할 목적으로 청나라에 갔다.”

홍대용의 중국 여행 기록인 『을병연행록』과 『담헌연기』, 이덕무의 『입연기』와 박제가의 『북학의』를 함께 읽고 연구하고 청나라 지식인과의 서신 왕래·교제를 통해 얻게 된 지식과 정부를 함께 읽고 토론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들 시는 이덕무, 박지원, 홍대용, 유금, 박제가의 중국 여행과 청나라 지식인과의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 18세기 조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는가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산 증언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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