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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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0.09.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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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㊼ 첫 겨울

개울가 하얀 판자문 길게 드리우고                      長掩溪邊白板門
나귀 탄 나그네 단풍 아래 와서 앉네                    騎驢客到坐楓根
산 속 집 본래 찾아오는 이 드문데                      山家自是人來罕
울타리 구멍 이따금 삽살개 짖어대네                    籬竇時時狵吠喧

사방 산 고요한 밤, 낙엽 날리는 바람 소리 요란하고    四山虛夜落風湍
저 멀리 돌문 차가운 푸른 우물 상상하네                遙想石門碧井寒
달 뜬 삼경 바람 소리 더욱 요란하고                    月出三更愈淅瀝
그 소리 푸른 전나무에 솟구쳐 구름소반까지 들어가네   韻高蒼檜入雲盤

십 리 푸른 물결 내 아우 집                            十里滄浪吾弟家
맑은 강 한그루 나무 자랑할 만하네                     淸江獨樹爾能誇
저 멀리 하목정 앞에 서서                               遙之霞鶩亭前立
한가로이 갈매기 수 헤아리니 흰 모래 일어나네         閒數煙鷗起白沙
『영처시고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이덕무는 일상 속에서 글을 찾고 일상 속에서 글을 썼다. 가장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이 다 글인데 왜 구태여 멀고 어려운 곳에서 글을 찾는단 말인가? 자기 자신의 안과 밖을 둘러보라. 글은 언제나 쉽고 가까운 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모든 것은 각자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글이 될 자격이 있다. 단지 우리가 그 가치와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 깨닫고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귀를 열고 들어라. 둘째 눈을 들고 보아라. 셋째 입을 열고 말하라. 넷째 마음을 열고 생각하라.

이덕무가 듣고 보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통해 일상 속에서 깨닫고 발견한 글을 모아 엮은 산문집이 바로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다.

산문만 그렇겠는가? 시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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