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 빵에 얽힌 불편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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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 빵에 얽힌 불편한 역사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12.0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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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빵 한 조각에 얽힌 그럴듯한 사연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금이야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골목 곳곳에 들어 서 기계에서 마구 찍어내는 빵들이 포장도 예쁘게 쏟아지고 있지만 한때 어린아이들에게 빵 한 입은 간절함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 빵이 들어온 것은 일제시대로 전해진다. 오래된 간판을 내건 빵집들의 역사도 일제시대를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셰프로 이름 꽤나 알려진 대학동창 녀석은 식사빵과 간식빵 논쟁에 ‘해괴한 논리’라는 토를 달았지만 서양과 달리, 그래도 우리에게 빵은 여전히 주식은 아니다.

주식으로 빵을 먹는 사람들은 빵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에 따라 성향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식빵으로 불리는 흰 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휘트맨 칼리지의 아론 바브로운 스트레인 교수는 『흰 빵의 사회학』(비즈앤비즈)에서 대량 생산된 흰 식빵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회적 꿈과 악몽을 말한다.

그는 흰 식빵이 지난 100여년간 인종학적 우생주의자, 시회개혁가, 식품전문가 그리고 미식 유행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1960년대의 반문화에서 흰 식빵은 미국의 파쇼적, 인종차별적 행동을 상징하는 ‘Amerika’의 표상이었다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고 부드러운 빵 한 덩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본다는 것에 거부감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흰 빵을 먹는 사람은 꿈이 없다”는 1970년대 스타일 메이커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말은 빵 한 조각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스트레인 교수에 따르면 말랑말랑한 식빵은 오늘날 슬로 푸드, 로컬 푸드, 유기농 건강식품 개혁가들이 추구하는 이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식품이다.

 

빵의 역사에는 모든 식품 관련 문제의 모순, 바른 먹거리와 건강한 공동체 관계에 대한 희망적 비전, 지속 불가능한 현재 상황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엘리트주의의 횡포, 오만한 가부장주의, 오도된 불안감과 때때로 나타나는 건강에 대한 신경증적 강박관념, 바른 먹을거리로 간주되는 식품에 대한 편협한 시선과 불량 식품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공개적인 차별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최초로 산업 생산된 식빵에서부터 최근의 미식 붐에 따른 천연 효모 빵에 이르기까지 빵에 얽힌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추적한 『흰 빵의 사회학』에서는 일상적으로 먹는 빵이 현대 발전의 정점을 상징하는 동시에 물리적 쇠퇴에 대한 불안의 상징이 될 수 있었는지, 또 소도시 농업의 상징이자 더 나은 미래가 오리라는 약속의 상징에서 미국의 몰락을 상징하게 되었는지를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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