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를 읽는가…공감·교감·상상력의 최고 경지
상태바
왜 시를 읽는가…공감·교감·상상력의 최고 경지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1.25 0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덕무 詩의 온도](59) 지봉(芝峯) 이수광의 시를 읽다

지봉 이수광의 시는 대략 다음과 같다.

붉은 매화 그림자 밑 문서 고요하고 紅梅影下文書靜
푸른 귤나무 그늘 가 안석 향기롭네 綠橘陰邊几席香

금귤 향기 속 산 사슴 졸고     盧橘香邊山鹿睡
석류꽃 아래 바닷새 찾아오네  石榴花下海禽來

소반 위 옥(玉) 자 같은 생선 오르고   盤中玉尺登魚婢
자리 위 금(金) 구슬 같은 과일 뒹구네 席上金丸走木奴

칼자루 매만지니 저녁 바람 조선에 일고 撫劍夕風生左海
시 읊조리니 가을빛 중원에 가득하구나  賦詩秋色滿中原

만호(萬戶)의 생황 노래 봄 구름 뜨겁고       笙歌萬戶春雲熱
천문(千門)의 복숭아 자두 꽃 밤 비 향기롭네  桃李千門夜雨香

찬 서리 내리려고 하니 맑은 단풍 차갑고  雁霜欲下淸楓冷
가을 비 막 개니 흰 갈대 듬성듬성하네    鷗雨初晴白葦疏

흐르는 샘 문에 가까워 가을 베개 울리고          風泉近戶鳴秋枕
눈 덮인 산봉우리 처마 마주해 밤 독서 밝혀주네  雪岫當簷映夜書

푸른 산 반쪽 밤비에 젖고               靑山半面夜雨濕
붉은 살구꽃 온 마을 봄바람 세게 부네  紅杏一村春風多

시구가 모두 맑고 고와서 읊조릴 만하다.
『청비록 2』

[한정주=고전연구가] 시를 짓는 이유가 그렇다면 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대화하고 공감하고 교감하는 방법 중 하나다.

시를 읽으면 사물과 공감하는 시인의 ‘감수성’을 읽을 수 있다. 시를 읽으면 사물과 교감하는 시인의 ‘사유’를 읽을 수 있다. 시를 읽으면 사물과 대화하는 시인의 ‘상상력’을 읽을 수 있다.

공감과 교감과 상상력은 사람이 사람일 수밖에 없는 필요충분조건 중의 하나다. 공감과 교감과 상상력이 없는 사람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시는 공감과 교감과 상상력의 최고 경지다. 왜? 가장 적은 말과 가장 짧은 글로 자신과 사물 사이의 공감과 교감과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표현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 읽는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는다. 첫째 시를 읽으면 모든 사물 혹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교감하는 수치가 올라간다. 감성지수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시인의 쓸쓸함을 읽으면 내 마음도 쓸쓸해진다.

시인의 맑고 고운 기운을 읽으면 내 마음도 맑고 고와진다. 시인의 고독을 읽으면 내 마음도 외로워진다. 시인의 웅혼한 뜻을 읽으면 내 마음도 웅장하고 탁 트여 막힘이 없게 된다.

둘째 시를 읽으면 세상에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은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상상력의 수치가 올라간다. 상상지수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2000년 전의 시인 굴원의 기운을 상상할 수 있고 1000년 전의 시인 두보의 고뇌를 상상할 수 있고 400년 전의 시인 이수광의 품성을 상상할 수 있고 200년 전의 시인 이덕무의 감성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의 공감력과 교감력과 상상력은 모든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초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단 한 마디의 시적 언어와 지극히 짧은 시구 속에 자신의 공감과 교감과 상상력을 다 담고 있는 시를 읽고 있으면 최고 경지의 정신적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좋은 시를 읽고 있으면 감성과 사유 그리고 상상력의 진폭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시를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