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시의 네 가지 기묘한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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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시의 네 가지 기묘한 발상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2.0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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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60) 붓을 달려
허백련, 노안도, 한지에 수묵, 42×63cm, 1951년 이후.
허백련, 노안도, 한지에 수묵, 42×63cm, 1951년 이후.

붉게 타오르는 등잔 아래 깊숙이 앉아 있으니         紫盪油燈坐著深
서로 괴롭히는 일 단 한 가지도 없구나                了無一事劇相侵
하늘 나는 기러기, 몸 편안한 계책이요                度天鴻客安身策
밤 새워 우는 벌레, 입에 쓴 경계일세                  守夜蟲朋苦口箴
우묵(雨墨)과 하전(霞箋), 그림의 뜻 통하게 하고     雨墨霞箋通畫意
연서(煙書)와 남자(嵐字), 시문의 마음 돕는구나      煙書嵐字助文心
행여 맑고 깨끗한 흉금의 선비 만나면                 倘逢瀟灑靈襟士
팔뚝 잡고 영원히 숲 속으로 들어가려네               把臂行當永入林
『아정유고 2』 (재번역한 것임)

[한정주=고전연구가] 발상의 기묘함이 돋보이는 시다. 이 때문에 이조원은 이 시를 가리켜 ‘교묘무쌍(巧妙無雙)’, 즉 “공교롭고 기묘하기가 견줄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곰곰이 감상해보면 이렇게 말한 네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하늘을 날고 있는 기러기를 안신(安身)의 계책’이라고 묘사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육신의 편안함으로 치자면 자유로움만 한 것이 없다. 하늘을 마음대로 나는 기러기 보다 구애받지 않고 구속당하지 않으며 얽매이지 않고 거리낌이 없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시구에는 재물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에 구속당하는 것보다 더 몸을 해치는 일은 없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에서 안신의 계책을 찾겠다는 이덕무의 뜻이 담겨 있다. 이조원은 안신의 계책을 기러기에서 찾아 묘사한 이덕무의 발상을 가리켜 ‘기묘하다’고 평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소리를 입에 쓴 잠언’으로 묘사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잠언이란 경계로 삼는 말 혹은 충고를 뜻한다. 밤새워 우는 벌레소리는 처량하고 구슬프고 고독하다. 처량함과 구슬픔과 고독함은 인생의 맛 중에서도 가장 쓴맛이다. 인생의 가장 쓴맛을 경계로 삼고 충고로 삼는데 무엇이 힘들고 두렵겠는가?

이조원은 밤새워 우는 벌레소리에서 인생의 가장 쓴맛을 떠올리며 삶의 경계와 충고로 묘사한 이덕무의 발상을 가리켜 ‘기묘하다’고 평한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좋은 먹을 ‘우묵(雨墨)’, 종이를 ‘하전(霞箋)’으로 묘사한 다음 그림을 그리고 싶은 뜻을 드러내 묘사한 것이다.

‘우묵’은 비 맞은 먹이고, ‘하전’은 노을 짙은 종이다. 비 맞은 먹보다 더 선명한 먹은 없고, 노을 짙은 종이보다 아름다운 종이는 없다. 먹을 비에, 종이를 노을에 빗대 묘사한 발상보다 더 ‘공교롭고 기발한 발상’을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네 번째 이유는 아지랑이처럼 아름다운 글자와 글씨를 ‘연서람자(煙書嵐字)’로 묘사한 다음 시문을 짓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 묘사한 것이다. 아지랑이처럼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붙잡아 글자와 글씨로 묘사한 것이 바로 시요 문장이다.

글자와 글씨를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비유하고 다시 그 글자와 글씨를 글을 짓고 싶은 마음에 빗대 묘사한 발상이야말로 진실로 ‘공교롭고 기묘한 발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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