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윤리보다 재화의 이로움 추구했던 실학자 서유구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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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윤리보다 재화의 이로움 추구했던 실학자 서유구 일대기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12.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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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석 서유구의 초상

조선시대 역사에 대해 초등학생 수준의 지식만 갖추고 있다면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의 학문적 성과를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풍석 서유구(1764~1845년)가 성취한 ‘거대한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는 별반 아는 사람이 드물다.

특히 정약용이 남긴 저술은 대부분 국역(國譯)돼 일반 독자들도 쉽게 대할 수 있는 반면 서유구의 저술은 2012년 『임원경제지』 개관서 출간이 전부다.

때문에 역사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서유구는 실학자이자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다.

서유구가 18년에 걸쳐 저술한 『임원경제지』는 모두 113권 52책, 250만자에 달하는 규모로 동아시아의 농서(農書)를 총망라해 조선의 환경과 제도에 맞는 ‘농업 경제학’을 구축했다.

훗날 개화파의 대부 박규수는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요즘 사람들은 사업과 공업을 천하다고 여겨 정치와 경제를 다스리는 책에 곰팡이가 필 지경”이라면서 “유독 공의 의론을 익히 들어보니 학문이 실용에 적합하지 않다면 진실로 부끄럽게 여겨야 하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를 저술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집안 내력을 무시할 수 없다.

18~19세기 홍석주․홍길주와 같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를 배출한 풍산 홍씨가 ‘문장학(文章學)’을 가학으로 삼았다면 서명응․서호수를 배출한 달성 서씨는 ‘농학(農學)’을 가학으로 전수했다.

서명응은 서유구의 할아버지이고, 서호수는 그의 아버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우리나라 농서(農書)의 고전이라고 부를 만한 서적을 남겼다. 서명응의 『고사신서(攷事新書)』·『본사(本事)』와 서호수의 『해동농서(海東農書)』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현실과 환경에 맞는 실용적 학문을 강조하는 가풍 속에서 성장한 덕분에 서유구는 일찍부터 실학(實學)의 대가로 거듭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익힐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할아버지 서명응 때부터 3대째 내려오는 가학(家學)인 ‘조선의 농업 경제학’과 더불어 “향촌과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 즉 농사와 의식주 등 일상의 경제생활에 필요한 실용의 학문을 집대성해 완성하겠다는 서유구의 확고한 신념에서 『임원경제지』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아가 벼슬하고 물러나 거처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세상에 나아가 벼슬할 때는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하고, 물러나 거처할 때는 스스로 의식주에 힘쓰고 뜻을 길러야 한다.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정치와 교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에 관한 서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향촌으로 물러나 거처하면서 자신의 뜻과 생업을 돌볼 수 있는 서적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산림경제』 한 책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도 수집한 정보나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다. 이에 나는 향촌과 시골 마을에 널리 흩어져 있는 모든 서적을 두루 모아 서책을 저술하기로 했다.” (서유구, 『임원경제지』 ‘예언(例言)’ 중에서)

최근 서유구의 일대기를 그린 『풍석 서유구-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씨앗을 뿌리는 사람)에서는 이 같은 배경에서 시작한 『임원경제지』를 완성하기까지의 치열한 삶이 담겨있다.

단지 농학자로서의 서유구를 넘어 민생민본의 실천자이자 조선 실학의 집대성자라는 사실을 그의 생애를 통해 조명한다.

서유구의 경제사상은 ‘도덕과 윤리’보다는 재화의 이로움을 추구하는 삶, 즉 ‘물질생활’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산림경제』의 철학을 추구하고 있다.

 

도덕과 윤리를 앞세운 정신적 삶의 가치를 앞세운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부터 해방돼 재화(財貨)의 이로움, 즉 물질생활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야말로 근대 자본주의와 더불어 탄생한 경제학의 모토라는 점에서 근대 경제학의 효시라 해도 틀리지 않다.

역사평론가 한정주씨는 “만약 조선이 일본과 서양의 제국주의에 의해 이식된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생적인 자본주의의 길을 걸었다면 서유구는 봉건시대의 경제이론과 근대 자본주의 경제학 사이에서 가교(架橋) 역할을 한 위대한 경제사상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서유구의 경제사상과 『임원경제지』를 저술하며 보여준 실용학문의 정신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경제학자는 물론 경제정책을 이끄는 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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