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의 지기(知己)·지음(知音), 작은 처남 백동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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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의 지기(知己)·지음(知音), 작은 처남 백동좌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4.1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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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68) 우연히 읊어 백동좌에게 보이다

개울가 집, 일 한가로워 넉넉하고          溪宅饒閒事
화로 향내 가느다란 연기 피어오르네      爐香放細煙
골짜기 꽃, 새벽 비 자욱하고               洞花迷曉雨
산 돌, 봄 샘물 방울방울 떨어지네         山石滴春泉
새소리 듣다 잠들기 일쑤                   睡或從禽喚
오직 손님 대해 시 읊을 뿐이네            詩唯共客聯
다음날 성(城) 놀이 약속하니              城遊明日約
또 한 번 마음 느긋하고 여유롭네         襟抱一悠然
『영처시고 2』 (재번역)

맑은 밤 백동좌의 집에서

초당 뜰 이리저리 거니니                  散步草堂庭
밤기운 차갑고도 맑구나                   夜氣寒且淸
하늘 위 달 바라보니                       仰看天上月
맑고 밝아 성(城) 나직이 내려오려 하네   皎皎欲低城
바람 높다란 나무숲 스치고 지나가니      風拂高樹林
이따금 숲 새 놀라 울어대네               林鳥有時鳴
가장 사랑스럽구나! 추운 겨울 피는 매화 最愛寒梅株
듬성듬성 꽃부리 드리웠네                 蕭疏垂其英
그대와 함께 이 좋은 밤 만났으니         與君値良宵
어깨 겯고 마음 속 정 풀어보세            把臂露心情
『영처시고 2』

백동좌의 서재에서

남산 아래 내 집터                    我屋南山趾
맑고 시원해 쉴 만하네               瀟灑聊可歇
그대 못 본 지 너무나 오래           不見良叔久
2월 처음 문밖 나왔네                二月門始出
그대 서재 맑고 깨끗한 흥취 많아    君齋多淸趣
뜰 나무 바람 햇빛 담백하구나       庭樹澹風日
다섯 줄 거문고 홀로 어루만지며     五絃手自撫
나 보고도 그칠 줄 모르네            見我猶不輟
거문고 속 뜻 얻었기에               只得琴中意
속세 생각 다 끊어버렸네             所以塵想絶
『영처시고 2』

[한정주=고전연구가] 『영처시고』는 이덕무가 어릴 때부터 20대 초반 때까지 지은 시를 묶어 엮은 시집이다.

『영처시고』는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2권은 남산 아래 거처할 때 창작한 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원 백씨와 결혼한 몇 년 후 남산 아래로 거처를 옮긴 이덕무는 산골 골짜기의 궁핍한 생활에도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창작 의욕과 문학적 자부심을 갖고 자신만의 시 세계를 만들어나갔다. 윤가기에게 보내는 시에서 이덕무는 당시 자신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막살이 삶이지만 내 나름대로 즐겁네 /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시만 읊조리니 / 가로로 백 질이요 세로로 한 보따리네.”

시 속 주인공인 백동좌는 백동수의 동생으로 이덕무의 작은 처남이다. 백동좌 역시 이덕무와 백동수처럼 범속(凡俗)한 삶에 초탈한 사람이었다. 이덕무의 시 속 세계에 백동수보다 백동좌가 더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면 오히려 형보다 더 욕심 없고 순박하며 꾸밈없는 삶을 살았던 인물 같다.

이덕무는 백동좌와 함께 연작(聯作)으로 시를 짓고 성 놀이를 나가고 매화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거문고 소리에 취하고 밤 새워 손잡고 심정을 털어놓는다.

지기(知己)와 지음(知音)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하물며 이덕무와 같은 고매한 인격과 고고한 자의식과 남다른 문재(文才)를 두루 갖춘 사람이 아무에게나 이렇게 하겠는가.

이덕무에게 백동좌는 개인적인 관계 이전에 이미 참된 인격자요 진실한 벗이었던 셈이다. 교우(交友)란 마땅히 이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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