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궁핍…“시인은 곤궁해진 뒤에야 시가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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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궁핍…“시인은 곤궁해진 뒤에야 시가 더 좋아진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7.13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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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75) 입춘에

구태여 언 벼루 앞에서 붓 녹이느라 애쓸 필요 있나  氷硯寧勞呵筆頻
온종일 따사로운 3월 봄날 햇볕 따라 앉아 보세      暄姸竟日坐陽春
예부터 좋은 날 한데 겹치기 쉽지 않은데             古來難値雙佳節
특별히 한 날 두 친구 기쁘게 맞이하네               分外欣逢兩故人
환한 달 비친 창문 그림자 어른어른                   月地囱櫳流素影
옷깃 스친 매화 향기로운 먼지 흩날리네              梅天巾袂涴芳塵
글짓기란 본래 곤궁과 근심에서 얻어지니            著書元自窮愁得
내 키만큼 작품 쌓였다고 친구에게 자랑하네         誇向眞交且等身
『아정유고 3』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이덕무는 시는 곤궁함과 궁핍함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곤궁하고 궁핍하면 가슴 속에 울분과 불평이 쌓이는 법이다.

뜻이 높고 식견이 넓지만 곤궁하고 궁핍한 탓에 자신의 지식과 경륜을 세상에 펼쳐볼 수 없는 사람일수록 그 가슴속에 쌓인 울분과 불평은 더욱 가득하게 마련이다.

이탁오의 말을 좇아 예를 들어보자. 곤궁하고 궁핍하게 사느라 그 가슴속과 그 목과 그 입에 오래도록 묵히거나 쌓인 울분과 불평을 도저히 참거나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어느 순간 문득 감정이 치솟아 일어나고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오고 울분을 마음껏 풀어내고 불평을 거리낌 없이 하소연하고 기구함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되면 저절로 마치 옥구슬과 같은 시어와 시구들을 토하듯 뱉어내고 하늘의 은하수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천연의 시를 짓게 된다.

일부러 시를 쓰려고 하거나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저절로 마음속에 쌓인 울분과 묵힌 불평이 터져 나와 그대로 시가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가슴속 울분과 불평이 시가 되려면 반드시 곤궁함과 궁핍함을 시적 동력으로 승화하는 문학적 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문학적 작용과 시적 승화가 일어나지 않는 울분과 불평은 단지 분노와 푸념에 불과할 뿐이다.

이덕무는 해가 저물도록 먹을거리를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곤궁했고 추운 겨울에도 방구들을 덥힐 불을 때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다. 비록 쓸쓸한 오두막집에 살면서 빈천(貧賤)을 감내하고 사는 삶을 스스로 편안하게 여겼다고 해도 어찌 마음속에 쌓인 울분과 불평이 없었겠는가.

또한 비록 권세 있는 사람을 찾아다니거나 지위 높고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부귀와 권력을 얻으려는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고 해도 서자라는 이유 때문에 온갖 사회적 차별과 멸시를 받아야 했던 삶에 어찌 울분과 불평이 없었겠는가.

오히려 ‘벌레가 나인가 기와가 나인가’라는 제목의 시나 초나라의 지사 굴원을 좋아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덕무는 가슴 가득 울분과 불평을 품은 비분강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덕무는 곤궁함과 궁핍함에 분노하거나 푸념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가슴속 울분과 불평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시작(詩作)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 덕분에 젊은 시절 이미 자신의 키만큼이나 많은 시를 얻게 되는 기쁨을 누렸다.

구양수는 “시인은 곤궁해진 뒤에야 시가 더 좋아진다”고 했고 소동파는 “궁색한 사람의 시가 더 좋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곤궁하고 궁핍한 삶이 명시인(名詩人) 이덕무를 낳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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