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산물? 혹은 사유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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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산물? 혹은 사유의 산물?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9.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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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78) 가을날 마음속 온갖 생각

상하 천 년 동안 거드름 피우며 섭렵하여          上下千年偃蹇吾
젊은 시절 품은 뜻 그다지 오활하지 않았네       弱齡齎志未全迂
때때로 영웅 이야기 웃으며 던져버리고           有時笑擲英雄譜
홀로 앉아 태극도(太極圖) 깊이 들여다보네       獨坐深看太極圖
막 잎 떨어진 나무 기운 맑고 깨끗하며             樹氣澄明新脫葉
멀리 새끼 거느린 기러기 소리 화평하여 즐겁네  雁聲和悅遠將雛
필상(筆床) 연갑(硯匣) 가진 것 전부라             筆床硯匣於焉地
하루종일 호젓이 아무 일도 없네                   盡日蕭然一事無

나그네 신세 열흘 만에 집에 돌아오니                   一旬爲旅始還家
낙엽 지는 나무 울어대는 기러기, 너희를 어찌하랴    落木鳴鴻奈爾何
메마른 붉은 밭 곡식, 밥 짓는 여인 원망이고           旱米硬紅炊女怨
기름지고 깨끗한 가을 생선, 저자거리 아이 자랑이네  秋鱗肥潔市童誇
초저녁 동산 달맞이 시 읊조리며                         詩迎初夜東山月
중양절 이웃집 국화 화분 부탁하네                       盆乞南隣九日花
닳아 떨어진 도서(圖書) 손질하고 나니                  修理圖書蕪沒後
옷깃 부여잡은 어린 동생 떠들어도 싫지 않네           牽衣弱弟不厭譁

남산이라 자각(紫閣·한양) 층층이 두른 성       南山紫閣繞層城
하늘 위 뜬구름 한 점 외나무에 걸려있네        上有浮雲一樹縈
갑 속 검 시렁 위 책, 높게 거드름 피우고        匣劍架書高偃蹇
새벽 우레 밤안개, 사방에 자욱하네              晨雷夜霧鬱縱橫
허무하구나! 만고(萬古)의 신선 그림자          虛無萬古神仙影
맑고 깨끗하구나! 인간 세상 처사(處士) 이름   瀟灑人間處士名
하늘이 하는 대로 자유로이 먹고 마시며        飮啄自如天可聽
하늘의 공평함 헤아리며 내버려두네            任他斟酌玉衡平

문장은 변변치 못한 재주라 너무나 힘들고   文章末技太勞哉
어찌하여 사람은 한번 가면 못 돌아오는가   何事人人去不廻
초나라 손숙오의 의관(衣冠) 원래 가짜이고  孫叔衣冠元是贗
팔공산 초목은 모두 의심할 만하네            八公草木盡堪猜
불평과 원망 예로부터 영웅의 역할이니       啁啾終古英雄役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 조화의 설움이네      刻露無餘造化哀
원만한 경지 이를 때 붓 잡기 좋으니           境到圓時搖筆好
선성과 율리 바로 기이한 재주네               宣城栗里迺奇才
* 선성은 남제(南齊)의 사조(謝脁), 율리는 진(晉)의 도연명(陶淵明)을 말한다.

두레박틀마냥 세상 좇아 살아갈 마음 없어  俯仰無心逐桔橰
초야에 묻혀 오활하게 살며 원망 않네       迂疏不怨隱蓬蒿
진실로 선배들의 그윽한 풍류 그리워하며   實憐前輩風流遠
감히 맑은 가을 높은 의기 자랑하네          敢詑淸秋意氣高
검은 사슴 변신하여 흰 안석에 돌아가고     烏鹿幻身歸素几
암룡 채색 휘날리며 웅장한 칼 호위하네     雌龍騰彩護雄刀
항상 얽매이지 않고 세상 바깥에서 노니니   何年擺脫遊霞外
끝없이 아득한 바다 거대한 자라나 낚을까   萬里滄溟釣巨鰲

『영처시고 2』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시는 감성의 산물일까 아니면 사유의 산물일까. 대개 시는 감성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는 사유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시는 불온한 사유 혹은 모험적 사유의 산물이다. 불온한 사유와 모험적 사유가 없다면 어떻게 새롭고 참신한 시가 탄생할 수 있겠는가.

불온한 사유와 모험적 사유는 무엇인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꿈꾸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자신의 시대를 넘어선 시를 썼던 시인들은 모두 불온하고 모험적인 시인이었다.

이덕무가 좋아했던 굴원이 그랬고, 도연명이 그랬고, 원굉도 역시 그랬다. 이덕무 역시 예외가 아니다. 비록 초라하고 쓸쓸한 오두막집에 들어앉아 있어도 천 년의 시간과 만 리의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지 않는가.

사유에는 경계가 없다. 정신이 경계에 구속당하면 옴짝달싹도 못하는 노예의 신세가 되고 만다. 이러한 까닭에 불온하고 모험적인 정신이야말로 경계가 없는 사유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중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유학과 성리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가난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신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조선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옛 시와 옛 글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이 모든 것은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글을 쓰기 위해 이덕무가 넘어야 할 경계였다.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꿈꾸는 불온함과 모험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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