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문(切問)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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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문(切問)의 미학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9.1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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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79) 가을밤 마음속 생각을 읊다

즉즉 우는 풀벌레소리 귀 가득 들리고           喞喞群虫滿耳聽
차가운 이슬 내려 풀뿌리에 엉겼네              倒飛涼露草根停
날아가는 기러기 굳센 기운 쓸쓸하게 이어지고  鴻流勁氣蕭森亙
휘영청 뜬 달 하늘 맑고 깨끗해 더욱 푸르네     月霽㵳天灑落靑
어느 누가 빠른 세월 애석하지 않으랴           歲色阿誰能不惜
마음속 품은 회포 거의 다 다스리기 어렵네      襟懷强半是難平
시서(詩書) 먼 옛날 선배들 그림자 붙들고       詩書遠把前修影
깊은 밤 큰 소리 읽으니 나뭇잎 기둥 두드리네  大讀三更葉打欞
영처시고 2』 (재번역)

절구(絶句)

단풍잎 발자국 덮어버려             紅葉埋行踪
산중 집 내키는 대로 찾아가네       山家隨意訪
글 읽는 소리 베 짜는 소리 조화로이 書聲和織聲
해질녘 서로 낮았다 높았다 하네     落日互低仰

새로 농기구 책 저술하고             新修耒耟經
한가로이 어패(魚貝) 노래 읊조리네  閒評魚貝詠
옛 사서(史書) 세상 등진 사람은      前史隱淪人
거의 성명(姓名) 전하지 않네         太生不傳姓

어리석은 사람 옛 시 담론하며           癡人談古詩
원명(元明) 시대 시 배척하기 좋아하네  喜斥元明代
어떤 시가 원명 시대 시인가 물으면      如何是元明
어리둥절 멀뚱멀뚱 아무 말 못하네       茫然失所對

절구(絶句) 짓기 가장 어려우니             絶句最難工
당나라 시인 특별한 본성 갖추었네         唐人別具性

전기(錢起)의 <강행(江行)> 시와             錢起江行詩
왕유(王維)의 <망천(輞川)> 시가 그러하네  摩詰輞川詠

돌 비탈길 나무꾼 조그맣고       石磴樵人細
먼 마을 한 점 불빛 붉네          遙村一火紅
강가 모래밭 그림으로 들어오니  川原堪入畫
온갖 경치 한눈에 들어오네       都在遠觀中
『아정유고 3』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공자가 성인이 된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질문(質問)’을 잘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알게 될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는 얘기다.

어떻게 물었을까. 그 하나가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면 다른 하나는 ‘절문(切問)’이다. 불치하문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 혹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절문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알게 될 때까지 간절하게 묻고 또 묻는다는 뜻이다.

이덕무의 시 세계의 바탕에는 절문의 미학이 있다. 이덕무의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시 세계는 간절한 질문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옛사람 또는 다른 사람의 시를 배우고 익히면서 어느 누구도 오르지 못한 독보적인 경지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이 추종하고 숭앙하는 옛사람과 다른 사람의 시 세계를 모방하거나 시법(詩法)을 흉내 내거나, 시작(詩作)을 답습하는 수준에서 만족했을 것이다. 이덕무는 모방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에게 간절하게 질문했고 흉내 내지 않기 위해서 자신에게 간절하게 질문했고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에게 간절하게 질문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옛 것이나 다른 사람의 것을 배우고 익히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새로운 것은 절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옛사람과 다른 사람의 것을 아무리 배우고 익힌다고 해도 새로운 것은 창조되지 않는다. 오히려 옛사람과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기 쉽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옛사람과 다른 사람의 것을 배우고 익히면서도 새로운 것이 나타날 때까지 스스로에게 쉼 없이 간절하게 질문하고 또 간절하게 질문해야 한다.

이덕무의 시 세계에 ‘절문의 미학’이 그토록 짙게 깔려있는 까닭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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