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여행…“아득하기가 선천 같다가 다시 또렷하기가 전생 같다”
상태바
시와 여행…“아득하기가 선천 같다가 다시 또렷하기가 전생 같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1.09.20 08: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덕무 詩의 온도](80) 금사사
'연행도' 중 13폭에 그려진 '유리창' . 유리창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북경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연행도' 중 13폭에 그려진 '유리창' . 유리창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북경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물굽이 활처럼 휘어 모래섬 보이지 않고          水背如弓不見洲
장쾌하게 유람하는 이 몸 객지에서 시름 달래네  壯遊吾且散羈愁
파도 소리 우렁차니 용의 무리 장난인가          群龍鬐戲潮音逈
지축이 떠다니니 모든 부처의 근심인가           諸佛眉憂地軸浮
해당화 가득 피니 또한 아름답고                  遍滿穠棠開亦艶
바다 멀리 날아오는 콩나물 그 사연 아득해라     飛來芽菽事頗幽
해마다 초여름 중국배 정박하니                   年年首夏唐船泊
승장(僧將)의 진영 해월루 높구나                 僧將營高海月樓
『아정유고 1』 (재번역)

계문(薊門)의 뽀얀 안개 속 멀리 보이는 나무

먼 하늘 자욱한 안기 기이하게 보이더니       積氣遙天一望奇
눈 깜짝할 사이 변해 사라지니 참 이상하구나  斯須變滅劇然疑
바라건대 신선은 언제나 만날 건가             庶幾仙子何時遇
이른바 이인(伊人) 온종일 생각하네            所謂伊人盡日思
온 땅에 흰 구름 가득 속절없이 비칠 뿐        滿地白雲虛自映
공중에 뜬 푸른 나무 재빨리 옮겨 가네         浮空翠樹倏如移
동편은 서편이 더 좋다고 부러워 말라          東邊莫羨西邊好
몸이 그 속에 있으면 모두 알지 못하네         身在那中各不知
『아정유고 3』 (재번역)

오룡정

높다란 누각 유리창 파란 호수 비치고                高閣琉璃碧映湖
푸른 숲 호리병박 꼭지 우뚝 솟았네                  靑林湧出頂葫蘆
맑게 갠 날 옥동교 위 바라보니                       天晴玉蝀橋頭望
소이장군(小李將軍)* 저색(著色) 그림이네           小李將軍著色圖
십 리 붉은 담 잇닿고 푸른 나무 우거져              十里紅牆綠樹紆
새로 솟은 수많은 연꽃 가지 평평한 호수에 꽂혔네  新荷萬柄揷平湖
만주 황제 이처럼 좋은 곳 차지하니                  滿洲皇帝家居好
오산(吳山)에 입마도(立馬圖)** 그리지 않네         不作吳山立馬圖
『아정유고 3』 (재번역)

* 소이장군(小李將軍) : 당나라 시대 화가 이소도(李昭道)를 가리킨다.
** 입마도(立馬圖) : 서 있는 말을 그린 그림. 여기서는 청(淸)나라가 예전 금(金)나라처럼 쉽게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금(金)나라 때 폐위된 황제 완안양(完顔亮)의 ‘오산(吳山)’이라는 제목의 시에 “백만 군대 서호 위로 옮겨 / 오산 제일봉에 말을 세웠네(移兵百萬西湖上 立馬吳山第一峯)”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한정주=고전연구가] 이덕무는 여행을 다닐 때 시 짓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특히 여행지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을 자신만의 느낌과 감성으로 읊는 것을 즐겼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낯익음’이 아닌 ‘낯설음’, ‘익숙함’이 아닌 ‘익숙하지 않음’에 있다. 여행의 가장 큰 유익함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풍경, 풍속, 지역, 사건, 사람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안목을 높이고 식견을 넓히며 선입견과 편견을 깨나가면서 정신을 살찌우고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여행을 가기 전의 나와 여행을 하고 있는 나와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여행에서 만나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곧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다. 누구나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면 이전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는 길이요, 또 다른 나를 찾아 나서는 길이요,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길이다.

20대 후반 한양을 떠나 황해도 장연의 장산곶을 찾아 나섰던 서해 여행이 이덕무에게 한양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 곧 임진강 북부지방을 경험하게 했다면 30대 후반 조선을 떠나 연경(북경)에 다녀온 청나라 여행은 이덕무에게 조선이라는 우물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 곧 중국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먼저 이덕무는 서해 여행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치 장맛비가 막 갠 듯, 오랫동안 앓은 병에서 막 일어난 듯, 불길한 악몽에서 불현듯 깨어난 듯, 난해하기 짝이 없는 책을 환히 깨우친 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방에 편안히 누워 지난 여행에서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아득하기가 선천(先天) 같다가 다시 또렷하기가 전생(前生) 같기도 했다.” (재번역)

또한 중국 여행을 통해 얻게 된 북학사상과 세계관의 혁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중국을 헐뜯는다고 한들 무엇이 낮아지고 / 중국을 칭송한다고 한들 무엇이 높아지겠는가! / 조선 사람의 안목 마치 콩알처럼 작으니 / 중국은 저절로 중국이네. / 조선 역시 좋은 점 있으니 / 어찌 중국만 모두 좋겠는가! / 중심과 주변의 구별이 있다고 해도 / 모름지기 평등하게 보아야 하네. / 대수롭지 않게 불 때는 구들 만들고 /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도 유리(琉璃) 그릇에 삶는다네. / 해마다 배운다고 해도 터득하기 어렵거늘 / 하물며 옛사람의 글이겠는가! / 천하에 가장 듣기 싫은 소리 / 까악까악 늙은 까마귀 소리지만 / 이보다 더 심한 일 있으니 / 썩은 선비 중국 연경(燕京) 이야기라네.” (재번역)

한 사람의 일생에서 여행이 얼마나 거대하고 혁명적인 역할을 하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