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몰락·극복·변화의 무한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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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몰락·극복·변화의 무한 반복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2.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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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 ①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Ⅳ

[한정주=고전연구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작가와 인문학자의 탄생 역시 인간 정신의 ‘몰락과 변신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

괴테는 30대 후반 로마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은 “제2의 삶 또는 진정한 재생(再生)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작가 괴테의 삶은 로마 여행 이전과 로마 여행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로마 여행은 낭만주의의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 괴테를 몰락시켰다. 그리고 괴테를 고전주의의 대표작 『파우스트』의 작가로 변신(변화)하게 만들었다. 낭만주의 작가 괴테가 몰락하면서 고전주의 작가 괴테로의 변신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루쉰은 필명이고 그의 본래 이름은 주수인이다. 루쉰은 애초 의사가 되려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수년간 의학 공부를 한 의학도였다.

하지만 센다이의학전문학교 2학년 세균학 교과 수업 때 관람한 일본 시사 영화 속 중국인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아 의학도의 길을 포기한다. 정신이 병들었는데 육체의 병을 고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에 루쉰은 중국인의 “정신을 뜯어고치기 위해 문예운동”, 즉 작가로 변신하게 된다.

훗날 루쉰은 “그 순간 그곳에서 나의 생각은 마침내 변화가 일어났다”고 회상한다. 의학도 주수인이 처절하게 몰락한 바로 그 자리에서 작가 루쉰으로의 변신(변화)이 일어났다고 하겠다.

몰락을 가장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욕망한 작가를 꼽을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김수영이다. 몰락은 김수영에게 창작의 원천이자 에너지였다. 1968년 4월 부산에서 펜클럽 주최로 행한 문학 세미나에서 김수영은 이렇게 말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김수영 전집 2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

지금까지 자신이 쓴 시가 모조리 몰락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시인이 지금까지 쓴 모든 시는 낡은 시에 불과하다. 낡은 시가 몰락해야 비로소 새로운 시가 태어난다. 그래서 시를 쓸 때마다 시인은 가장 처절하게 몰락해야 한다. 처절하게 몰락하면 몰락할수록 더욱 생동(生動)하는 시가 나오기 때문이다.

삶의 고통 가운데 가장 극심한 고통 중 하나가 실연, 즉 사랑의 몰락이다. 하지만 사랑의 몰락 역시 단지 새로운 사랑의 출현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새로운 사랑이 등장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고독과 고통의 밤을 감내해야 한다.

몰락은 곧 변신(변화)이지만 그것은 가능성일 뿐 현재성은 아니다. 사랑의 몰락이 사랑의 변신(변화)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독과 고통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고독과 고통의 두려움 때문에 몰락을 긍정하고 욕망하지 않는다면 이미 잃어버린 사랑에 갇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독과 고통의 과정은 곧 자기 극복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독과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용기’라고 말한다. 용기야말로 고독과 고통을 죽이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살해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용기는 죽음을 죽이기까지 한다. 헤어 나오기 힘든 삶의 구렁 앞에서도 우리는 ‘용기’라는 뛰어난 살해자 덕분에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용기, 그것이야말로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공격적인 용기야말로. … 인간은 더없이 용기 있는 짐승이다. 인간은 바로 그 용기에 힘입어 온갖 다른 짐승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 용기는 심연에서 느끼는 현기증까지 없애준다. 그런데 사람이 머무는 곳치고 심연이 아닌 곳이 어디 있던가? … 용기는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공격적인 용기는.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함으로써 용기는 죽음을 죽이기까지 한다. 이 같은 말 속에는 많은 승리의 함성이 들어 있다. 귀 있는 자, 들을지어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정동호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0, p130.

‘몰락과 변화’에 관한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것이 한두 차례 혹은 서너 차례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은, 아니 존재하는 모든 것의 역사는 몰락과 변화의 무한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에게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몰락해야 한다. 몰락이 전제되어야 자기 극복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변신(변화)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몰락-자기 극복-변신(변화)이 무한히 반복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몰락→자기극복→변신(변화)→다시 몰락→다시 자기극복→다시 변신(변화)→또다시 몰락→또다시 자기극복→또다시 변신(변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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