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국인의 주요 활동공간 조명…『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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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외국인의 주요 활동공간 조명…『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 발간
  • 김윤태 기자
  • 승인 2022.04.1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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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편찬원은 지난달 31일 서울역사중점연구 제12권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를 발간했다고 15일 밝혔다.

수록된 총 6편의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에 관한 연구논문은 20세기 이후 서울에 터전을 잡은 외국인들의 주요 활동공간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했다.

먼저 이연경(인천대 연구교수)의 ‘개항 이후 서울 서부지역의 서양인 거주지와 연희전문학교의 모범촌 건설’을 통해 서양인들의 거주공간의 확장과정을 살펴보았다.

개항기 이후 정동에서부터 시작된 서양인들의 거주공간은 일제강점기 서대문 밖 냉천정(냉천동)과 죽첨정(충정로 일대)에서 경성부 밖 연희면(연희동) 일대로까지 확장됐다.

한편 연희전문학교 초창기 마스터플랜을 통해 캠퍼스와 부근의 이상촌을 마련해 학생과 교직원뿐만 아니라 기혼 학생들의 가족들에까지 기독교 교육과 서양식 생활을 제공하고자 함으로써 서양인 선교사들이 이상향으로 삼았던 마을의 모습을 밝혔다.

두 번째 양지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일제강점기 서울 내 일본인 거주공간의 형성과 거주양상’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의 변화 과정과 거주공간의 이면을 다루었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서울을 민족·계층의 측면에서 북촌과 남촌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인 거주자가 증가함에 따라 일본인과 조선인의 접촉지대는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잡거’의 모습을 주목했다.

사회문화사적 측면에서 서울의 일본인들이 잡거를 했던 조선인들로는 대표적인 존재들로 토막민과 하녀를 꼽을 수 있다. 비록 이들은 같은 구역·공간 속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이웃 혹은 일인 가정의 타자로 구분되는 존재로 구분되고 있었다.

세 번째 박준형(서울시립대 교수)의 ‘해방 후 ‘신생국가’ 대한민국의 나라 세우기와 소공동 일대 화교 거주지의 소멸’에서는 근대국민국가를 건설해 가는 속에서 해방 후 서울 내 외국인 거주자로 남아 있던 소공동 일대의 화교 거주지의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소공동 일대는 19세기 말 이래로 화교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이었지만 신생국가 대한민국의 법제는 그들의 오랜 거주 역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거주지 자체에 대한 면적도 제한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근대화의 구호 속에 서울 도심부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소공동 일대는 화교지구로 구역화됐고, 그 지역은 재벌이 대신 자리 잡게 되며 소멸됐다.

네 번째 금보운(고려대 연구교수)의 ‘용산 미군기지 주변 민·군 생활공간의 교차’에서는 외인주택 건설과 미군의 거주 과정을 통해 용산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한 민·군의 생활공간을 조명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사기지가 건설돼 있던 용산이 광복 이후에도 미군 기지로 선정됐다. 특히 미군의 기지운영 정책에 의해 미군의 거주공간은 기지 외부로 확대돼 기지 주변 민간공간과 생활반경을 공유하며 용산에는 민과 군의 잡거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용산~한남동 일대는 미군과 생활공간을 공유한 주민의 서구식 생활공간 경험 확대, 군사 매체의 교류, 생계수단의 연계가 이루어졌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이 이루어진 지금 군사공간의 민간화에 대한 의미를 반추해 볼 시점이다.

다섯 번째 신재준(전주교육대 교수)의 ‘한일 국교의 ‘정상화’와 일본인 집거지의 형성’에서는 동부이촌동이 과거 ‘재팬타운’이라고 불렸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1945년 약 16만명이던 서울 내 일본인은 광복으로 감소하다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전후로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2020년대 이후 등록외국인 기준 7000~8000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외인아파트와 식료품상점, 일본어가 가능한 점포 등 생활환경이 갖추어져 있던 동부이촌동과 인근 한남·이태원 등지는 일본인들이 편리성과 보안을 이유로 선호하는 지역이었다. 오늘날은 마포구 상암동 등지로 넓혀가고 있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유슬기(서울대 강사)의 ‘혜화동 외국인 커뮤니티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과거 ‘독일인 마을’로부터 오늘날 ‘리틀 마닐라’로 바뀌게 된 역사를 다루었다.

조선 후기 성균관 반촌에서는 천주교 비밀 모임이 성사됐고, 이곳에 1909년 독일 베네딕토회가 백동수도원을 설립해 학교·기숙사·성당·밭·과수원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갖춘 마을을 만들며 ‘독일인 마을’이라 불렸다.

독일인이 떠난 자리에 혜화동성당이 설립되고 그곳에는 필리핀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미사의 장소가 됐다. 종교모임으로 시작해 타지생활로 인한 향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의미가 확대돼 외국인커뮤니티 ‘리틀마닐라’를 형성했다.

『서울 내 외국인 집단활동지의 역사』의 가격은 1만원이다. 시민청 지하 1층 서울책방과 온라인책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다.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으로도 열람이 가능하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2022년 현재 서울에서 활동하는 생활인구의 약 4.6%가 외국인으로 이 책을 계기로 서울 속 외국인들의 활동공간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 확장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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