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사건서 비롯된 경로 이탈…성찰·새로운 삶의 탄생
상태바
뜻밖의 사건서 비롯된 경로 이탈…성찰·새로운 삶의 탄생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4.25 0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전 인생수업]③ 박지원 『열하일기』…클리나멘-탈주·접속·성찰·변신Ⅲ
북경으로 가는 조선 연행 사신단. [출처=돌베개 발행 열하일기]
북경으로 가는 조선 연행 사신단. [출처=돌베개 발행 『열하일기』 중에서]

[한정주=고전연구가] 거식증·불면증·우울증이라는 뜻밖의 사건은 연암의 삶에 경로 이탈과 방향 선회를 일으켰다. 그 순간 연암은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한 양반 사대부 세계에서 탈주해 완전히 낯선 저잣거리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연암은 수많은 낯선 타자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연암은 저잣거리 세계의 타자들을 통해 자신이 속한 양반사대부 세계의 위선과 모순을 성찰할 수 있었다. 그 성찰의 결과물이 연암이 우리에게 남긴 고전 명작인 풍자 소설들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연암의 극적인 변신과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나이 마흔네 살 때 연암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 두 번째 ‘뜻밖의(혹은 우연한)’ 사건이 다시 연암을 찾아왔다. 이보다 2년 전 연암은 쫓기다시피 한양 집을 뒤로 하고 개성 부근 연암협(燕巖峽)으로 떠나야 했다. 정조대왕이 즉위하면서 권력을 휘두르게 된 권신 홍국영이 평소 자신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비난한 연암을 해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해 권력에 눈이 먼 홍국영은 죄를 입어 조정에서 쫓겨났고 연암은 다시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연암이 떠나있던 몇 년 동안 한양 사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욱이 가까이 지내던 옛 친구들도 거의 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연암은 더욱 세상에 대한 뜻을 잃고 스스로 자유분방하게 지냈다. 답답한 마음에 항상 멀리 떠났으면 하는 생각만 지니고 살았다.

그때 마침 삼종형(三從兄:팔촌형)인 금성도위(영조의 부마) 박명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단의 정사(正使:총책임자)로 떠나면서 연암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뜻밖에 찾아온 청나라 여행은 연암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좁고 답답하고 구석진’ 조선을 탈주해 호기심 가득한 새로운 세계의 무수한 타자들과 마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연암은 낯선 세계의 무수한 타자들과의 마주침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불러올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암이 청나라 여행 내내 사신단의 정상궤도에서 이탈하여 끊임없이 낯선 세계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타자들과 무수한 이야기를 엮어냈던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열하일기』를 읽어보면 사신행의 정상궤도에서 이탈한 연암이 무수한 사건과 타자들을 마주하면서 만들어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열하일기』의 진짜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번에 내가 구경한 것은 겨우 100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 역관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하고, 더러는 들어가기 힘든 곳을 문지기와 다투어 가면서 바야흐로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언제 갔는지 총총하여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 이 때문에 다섯 감각 기관인 눈·귀·코·혀·피부는 모두 피로한 상태이고, 베껴 적으려다 보니 문방사우가 모두 부족해졌다. … 귀국한 뒤에 기록했던 작은 쪽지를 점검해보니 종이는 나비 날개처럼 얇고 자그마하며 글자는 파리 대가리처럼 작고 까맣다.” (박지원, 『열하일기』 <앙엽기> 「서문」)

예를 들어 『열하일기』 속 이야기 가운데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호질(虎叱)」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겠다. 이 글은 연암이 청나라 옥전현에 머물 때 남몰래 사신단의 숙소를 빠져나와 성 안 저잣거리의 낯선 점포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곳 점포 벽 한 면에 족자 같이 붙여놓은 이상야릇한 글 한 편을 정진사와 함께 베낀 다음 숙소로 돌아와 지은 글이 「호질」이라는 게 연암의 전언이다.

“저녁에 옥전현에 닿았다. … 성 안으로 들어가 어떤 점포에 들어가 구경을 하자니 생황에 맞추어 노래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바람벽 위에는 이상한 글 한 편을 써서 걸어 두었는데 흰 종이에 가는 글씨로 벽 한 면이 가로 차도록 족자같이 붙여놓았다. … 숙소로 돌아와서 등불을 켜고 훑어본 즉 정진사가 베낀 몫은 오자(誤字) 낙서가 허다하고 글귀는 문리가 통하지 않는 데가 많았으므로 내 뜻을 약간 붙여 엮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박지원, 『열하일기』 <관내정사〉 「호질」)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