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찾아온 뜻밖의 사건과 낯선 타자를 맞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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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찾아온 뜻밖의 사건과 낯선 타자를 맞이하라”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5.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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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③ 박지원 『열하일기』…클리나멘-탈주·접속·성찰·변신Ⅳ
북송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박지원이 청나라 연행 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풍경 중 하나는 바로 ‘선박과 수레의 활발한 이용’이었다.
북송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박지원이 청나라 연행 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풍경 중 하나는 바로 ‘선박과 수레의 활발한 이용’이었다.

[한정주=고전연구가] 청나라 여행은 연암에게 익숙한 세계를 벗어난 삶의 두 번째 낯선 세계로의 탈주였다.

첫 번째 탈주가 양반 사대부 세계로부터의 탈주였다면 두 번째 탈주는 조선이라는 세계로부터의 탈주였다. 또한 첫 번째 탈주가 ‘저자거리’라는 외부 세계와의 마주침(접속)이었다면 두 번째 탈주는 ‘중국(청나라)’이라는 외부 세계와의 마주침(접속)이었다.

첫 번째 탈주에서 연암이 저자거리 세계를 통해 양반 사대부 세계의 위선과 모순을 성찰했다면 두 번째 탈주에서 연암은 ‘중국(청나라)’이라는 세계를 통해 ‘조선’이라는 세계의 위선과 모순을 성찰했다.

외부 세계를 경험해야 역설적이게도 내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대개 내부 세계의 도덕과 관습, 규칙과 질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외부 세계를 경험하게 되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자기 세계의 도덕과 관습, 규칙과 질서가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 이치로 타자를 마주해야 비로소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10대 후반과 40대 중반 연암에게 찾아온 뜻밖의 사건 그리고 타자와의 조우, 익숙한 세계로부터의 탈주, 새로운 세계와의 마주침(접속)이 왜 양반 사대부와 조선이라는 세계의 위선과 모순을 성찰할 수 있는 동력이자 에너지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삶에 찾아온 ‘뜻밖에’ 혹은 ‘우연하게’를 가장 긍정적으로 찬양한 철학자는 니체였다. 니체는 ‘뜻밖에’와 ‘우연하게’야말로 삶의 축복 중 축복이라고 말한다. ‘뜻밖에 마주한 타자, 우연하게 발생한 사건.’ 새로운 삶의 변화와 주체의 변신은 바로 여기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건과 타자는 삶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에너지라고 하겠다.

“‘모든 사물 위에 우연이라는 하늘, 천진난만이라는 하늘, 뜻밖이라는 하늘, 자유분방이라는 하늘이 펼쳐져 있다.’ 내가 이렇게 가르친다면 그것은 축복일망정 모독은 아니다. ‘뜻밖에.’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이 유서 깊은 귀족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p277>

여기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삶에 찾아온 뜻밖의(우연한) 사건과 낯선 타자를 반가이 맞이하라. 새로운 삶이 시작되리라.” 지금 우리가 아는 연암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10대 후반의 첫 번째 클리나멘-양반 사대부 세계로부터 탈주한 연암은 저자거리 세계와 접속했다. 저자거리 세계의 타자들과 마주한 연암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양반 사대부 세계의 위선과 모순을 성찰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풍자 소설로 엮어내면서 연암은 비로소 ‘양반이지만 더 이상 양반이 아닌-양반이지만 더 이상 양반의 규범과 경계에 갇히지 않은-’새로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18세기를 풍미한 진보적 지식인 연암의 탄생이다.

40대 중반의 두 번째 클리나멘-‘조선’이라는 세계로부터 탈주한 연암은 ‘중국(청나라)’이라는 세계와 접속했다. 중국(청나라)에서 다양한 사건, 무수한 타자와 마주한 연암은 그 낯선 경험을 통해 조선이라는 세계의 위선과 모순을 성찰했다.

중국(청나라)에서 마주한 사건과 타자들의 이야기를 『열하일기』로 엮어내면서 연암은 비로소 ‘조선 사람이지만 더 이상 조선 사람이 아닌-조선 사람이지만 더 이상 조선 사람의 규범과 경계에 갇히지 않은-’새로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특히 두 번째 사건·탈주·접속·성찰이 탄생시킨 『열하일기』는 단순히 연암 개인의 변신에서 끝나지 않았다. 첫 번째 클리나멘이 ‘개인의 변신’이었다면 두 번째 클리나멘은 ‘시대의 변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하일기』는 18세기의 시대 흐름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든 시대사조 혹은 시대정신의 변화를 낳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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