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스테스의 어머니 살해 사건…유죄·무죄 ‘가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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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스테스의 어머니 살해 사건…유죄·무죄 ‘가부동수’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2.06.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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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⑤ 아이스퀼로스 『오레스테이아』…이것이 정말 정의인가?Ⅰ
괴로워하는 오레스테스.
괴로워하는 오레스테스.

[한정주=고전연구가] 정의란 무엇일까.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누구라도 정의라고 수긍할 수 있는 정의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누구에게는 정의로운 것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정의로운 것이 아니고 심지어 불의한 것은 아닐까. 반대로 누구에게는 불의한 것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불의한 것이 아니고 심지어 정의로운 것은 아닐까.

인간이 ‘정의’라는 주제를 다룰 때 불가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애매모호함과 혼란스러움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고전 작품이 바로 그리스 비극 문학의 창시자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이다.

『오레스테이아』는 「아가멤논」, 「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의 3부작으로 구성돼 있다. 아가멤논의 죽음과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의 복수를 주요한 줄거리로 이야기가 엮어져 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은 10년 만에 고향 아르고스로 귀환한다. 그런데 귀향한 바로 그날 아가멤논은 자신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살해당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에 살해됐을 당시 가정교사의 손에 의해 빼돌려져 델포이의 신전이 있는 포키스에서 양육된다. 여기까지가 『오레스테이아』의 1부 「아가멤논」의 줄거리이다.

아가멤논이 살해당한 지 8년이 지난 어느 날 오레스테스는 친구 필라테스와 함께 비밀리에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르고스로 돌아온다. 오레스테스는 아가멤논의 무덤가에서 누이 엘렉트라와 극적으로 조우한다.

엘렉트라는 동생 오레스테스가 언젠가 돌아와 아버지의 복수를 할 것이라는 희망만을 간직한 채 아버지를 죽인 원수들(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이 지배하는 궁전에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왔다.

엘렉트라와 의기투합한 오레스테스는 마침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르고스 궁전으로 향한다. 오레스테스는 포키스의 여행자로 가장한 채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눈을 속인 뒤 자신이 객사(客死)했다는 거짓 정보를 전한다.

아가멤논의 죽음 이후 항상 오레스테스가 복수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던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크게 안도하며 오레스테스와 필라테스를 궁전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어릴 적 오레스테스를 손수 기른 유모에게 자신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불러오게 한다. 오레스테스가 죽어 이제 재앙의 뿌리가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레스테스의 정체를 눈치챈 유모는 아이기스토스가 호위병 없이 혼자 궁전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인한다. 홀로 궁전 안으로 들어간 아이기스토스는 오레스테스의 칼에 무참하게 쓰러진다.

잠시 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있는 오레스테스 앞에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나타난다.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오레스테스를 낳아 기른 자신의 젖가슴을 내보이며 목숨을 애원한다. 한순간 오레스테스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죽이기를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인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 필라테스가 아폴론의 신탁과 복수의 맹세를 상기시킨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궁전 안으로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를 데리고 들어가 살해한다. 아버지 아가멤논의 복수를 끝마쳤다는 생각에 오레스테스가 기쁨에 젖어 있던 바로 그 순간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의 원한과 증오에 찬 망령이 불러낸 ‘복수의 악령들’이 “검은 옷을 입고 머리에 우글거리는 뱀의 관을 쓴 채” 오레스테스에게 다가온다.

공포에 사로잡힌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을 피해 자신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아폴론 신을 찾아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으로 급히 도망친다. 오레스테스의 비극적인 복수극의 가장 중요한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오레스테이아』의 2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반미치광이가 되다시피 한 오레스테스는 가까스로 델포이의 신전 앞에 도착한다. 오레스테스 앞에 나타난 아폴론 신은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분노와 원한이 불러낸 복수의 악령들을 피하려면 아테나이로 가서 아테나 여신에게 탄원하라고 일러준다.

자신을 찾아온 오레스테스의 탄원을 들은 아테나 여신은 가장 훌륭한 아테나이 시민(남성)으로 배심원단을 구성해 재판을 시작한다. ‘오레스테스의 어머니 살해 사건’을 다룬 이 재판에서 아테네의 배심원단은 유죄와 무죄를 가부동수(可否同數)로 판결한다. 가부동수가 나올 경우 무죄로 간주한다는 재판 전의 합의에 따라 마침내 오레스테스는 무죄로 풀려난다.

오레스테스가 무죄 판결을 받고 고향 아르고스로 무사히 떠나자 ‘복수의 악령들’은 아테나이 땅에 분노와 원한의 재앙을 퍼뜨릴 것이라고 위협한다. 하지만 아테네 여신의 설득에 마음을 돌린 ‘복수의 여신들’은 마침내 ‘자비의 여신들’로 변신한다.

『오레스테이아』의 마지막 3부의 제목이 「자비로운 여신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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