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절망…아Q의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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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절망…아Q의 정신승리
  • 한정주 기자
  • 승인 2022.07.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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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⑥ 루쉰 『아Q정전』…모든 乙들의 절망 ‘정신승리’Ⅰ
절망을 깊게 들여다봤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가장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루쉰.
절망을 깊게 들여다봤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가장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루쉰.

[한정주=고전연구가] 루쉰만큼 ‘절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작가는 없다. 절망을 그토록 깊게 들여다봤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루쉰은 ‘희망’을 가장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절망과 희망’, 이 주제는 의학도였던 루쉰이 작가로 변신해 소설을 쓰려고 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루쉰은 ‘희망’이라는 낱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다케우치 요시미가 말한 것처럼 루쉰이 목도한 세상이란 ‘암흑과 절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루쉰은 38세 때 소설 처녀작인 『광인일기』를 썼다. 훗날 루쉰은 첫 소설집 『외침』에서 자신이 『광인일기』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다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철로 만든 방 한 칸이 있다고 하자. 이 방은 창문도 없이 바깥과 단절되어 있고 깨뜨리기도 어렵다. 그런데 방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질식해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깊은 잠에 빠져 의식이 없기 때문에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비애 따위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지금 자네가 크게 소리쳐서 그 가운데 몇몇 사람을 깨운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놀라 깨어나 정신을 차린 몇몇 사람은 불행하게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게 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자네는 오히려 그들에게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몇몇 사람이라도 잠에서 깨어날 수만 있다면 자네가 말한 것처럼 철로 된 방을 깨뜨릴 희망이 절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나.’
맞다. 나는 비록 확고한 신념이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 데 이르러서는 차마 그것을 아주 무시하거나 꺾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희망이란 다가올 미래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희망은 절대 없다는 나의 확신을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그의 말을 꺾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어서 결국 나도 그에게 글을 한번 써보겠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내가 쓴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다.”

루쉰이 남긴 거의 모든 글은 암흑에 잠겨 있는 20세기 초 중국 사회와 중국인을 ‘절망과 희망’의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 ‘암흑·절망·희망’ 이 세 가지는 루쉰 문학의 키워드다. 이 가운데에서도 핵심 키워드는 ‘절망’이다. 절망에 대한 깊은 관찰과 내밀한 통찰을 통해 온통 암흑인 세상의 진실을 밝히고 희망의 실체를 낱낱이 해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절망의 작가’ 루쉰에게 가장 ‘절망적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예’인데도 자신은 절대 ‘노예’가 아니라는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중국인의 정신 상태. 현실의 고통과 패배를 관념적으로 조작해 환희와 승리로 둔갑시키는 중국인의 정신 상태. 다시 말해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주권을 빼앗기고 자유를 박탈당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정신승리’라는 함정에 빠져서 ‘노예’의 진실과 ‘굴욕’의 현실을 자각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중국인의 정신 상태였다.

루쉰의 이 거대한 절망이 탄생시킨 소설이 바로 대표작 『아Q정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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