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재발견…주변의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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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재발견…주변의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의 아름다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2.0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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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
▲ UC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에 보관중인 <청장관전서>. 모두 33책 71권으로 서울 규장각에는 25책을 소장, 8책이 결본되어 있으나 UC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은 33책 완질을 소장하고 있다.

[한정주=역사평론가]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이덕무의 글을 읽고, 이덕무에 관한 글을 쓰면서 보냈다. 언제인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어느 순간 이덕무가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덕무는 『청장관전서』라는 제목의 문집을 통해 엄청난 분량의 시문과 백과사전적 지식 및 기록을 남겨놓았다. 17세기 지봉 이수광의 『지봉유설』과 18세기 중반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이 이루어 놓은 백과사전과 박물학의 계보를 이어 19세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물려준 사람이 이덕무다.

특히 이규경은 이덕무의 친손자다. 이규경은 할아버지 이덕무가 평생 일구어놓은 백과사전적 지식 탐구 및 기록과 ‘고증(考證)과 변증(辨證)의 학문’을 하나의 가학(家學)으로 물려받아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기념비적 저작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얼마 전 방대한 규모와 분량을 자랑하는 이덕무의 문집 『청장관전서』를 한 권의 책으로 집약해 재구성하고 해설과 평론을 더한 『이덕무를 읽다』(가제)를 집필했다.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필자를 사로잡았던 이덕무에 관한 한 편의 종합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집필 작업이 끝난 이후에도 필자는 이덕무를 놓아 보내지 못했다. 한 권의 책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이덕무의 다양한 면모가 여전히 필자의 마음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덕무가 남긴 시문과 기록 가운데에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필자를 매료시켰던 글은 다름 아닌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와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속의 소품문이었다.

『이목구심서』는 이덕무가 24세에서 26세까지 3년 동안 쓴 소품의 글들을 모아 엮은 산문집이다. 『선귤당농소』는 이보다 이른 시기에 쓴 소품문 모음집이다.

어쨌든 모두 20대 초·중반에 쓴 글들이다. 『이목구심서』는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을 만큼 분량이 많다. 반면 『선귤당농소』는 『이목구심서』의 몇 십분의 일 정도의 분량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산문집은 마치 연작(連作)처럼 글에 담은 뜻과 기운이 닮아 있다. 따라서 하나로 묶어 책을 엮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덕무는 여기에서 특유의 감성과 사유를 통해 평소 별반 가치나 의미가 없다고 지나쳤던 우리 주변의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러한 까닭에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 속 소품문을 하나하나 읽어내려 가다 보면 독자들은 일상의 가치와 미학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에 더욱 특별한 애착을 갖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소품의 글을 모아놓은 이 두 산문집이 마음껏 자유롭게 필자만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데 큰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목구심서』는 제목 그대로 이덕무가 평소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선귤당농소』는 ‘선귤당에서 크게 웃는다’는 뜻 그대로 이덕무가 일상생활 속 신변잡기와 잡감(雜感)을 글로 쓴 것일 뿐이다.

필자는 글이란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묘사하고 솔직한 생각을 표현하였다면 잘 쓴 글인지 그렇지 않은 글인지는 별반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두 소품문 모음집을 통해 분명하게 깨우칠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글쓰기가 두렵고 어려운가? 그렇다면 ‘소품문의 글쓰기’부터 시작해 보라. 소품문에서는 일상의 사소하고 잡다한 것은 물론이고 하늘로부터 땅 끝까지 무엇이든 글로 옮겨 적어도 괜찮다.

형식이나 격식에 구속받을 필요도 없다. 한 줄을 써도 좋고, 열 줄을 써도 좋고, 백 줄을 써도 괜찮다. 일기의 형식을 취해도 좋고, 편지의 형식을 취해도 좋고, 메모나 낙서의 형식을 취해도 좋다.

책상에 앉아 종이나 컴퓨터에 써야 글인가? 아니다. 길을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문득 글로 옮겨 적을 만한 것이 떠오르면 핸드폰(스마트폰)에 쓰면 된다. 그저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을 진솔하게 글로 옮겨 적으면 충분하다.

단 거짓으로 꾸미거나 애써 다듬으려고 하지 말라. 그렇게 할수록 글을 쓴다는 것은 더욱 두려워지고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이목구심서』과 『선귤당농소』 속 이덕무의 소품문과 거기에 덧붙인 필자의 글은 마땅히 이러한 시각과 관점을 갖추고 읽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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