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고통에 둔감한 도시인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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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고통에 둔감한 도시인의 일상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1.2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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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⑩ 알베르 카뮈 『이방인』…일상 속의 유령 ‘무관심·고독’Ⅲ

[한정주=고전연구가] ‘고독과 무관심’이라는 유령이 도시인의 삶과 일상 속을 떠돌아다니다 이제 도시 전체를 지배하게 되면 욕망을 좇는 사람이든 혹은 욕망에 무심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 ‘무관심과 고독’에 익숙해지게 된다.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고독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이방인』의 히어로 뫼르소 역시 자신이 타자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무관심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다.

무관심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 타자의 삶, 특히 감정과 고통에 대해 무디어지게 된다. 무관심은 곧 타자에 대한 공감과 소통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을 치른 후 알제로 돌아오는 내내 이미 도시의 삶에 지쳐 있던 뫼르소의 머릿속은 피곤하다는 생각과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다시 “알제의 빛의 둥지 속으로 돌아왔을 때” 뫼르소는 열두 시간 동안 실컷 잠잘 수 있는 “기쁨”을 만끽한다.

잠에서 깬 뫼르소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전차를 타고 항구 해수욕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예전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는 타이피스트 마리 카르도나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 뫼르소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아파트 안을 어정거리다가 발코니에 나가 앉아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낯익은 도시의 풍경들을 감상한다. 뫼르소는 “갑자기 가로등이 켜지고 어둠 속에 떠오르던 첫 별빛들이 희미해질” 때까지 온갖 사람들과 빛이 가득한 보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무심하고 표정은 영혼이 없다. 도시인을 지배하는 삶, 즉 ‘무관심과 고독’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린 그에게는 어머니의 죽음도, 마리 카르도나와의 데이트와 잠자리도 그리고 거리의 온갖 풍경과 사람들도 단지 의미 없는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이방인』, 민음사, 2011, p32.)

뫼르소는 타자의 마음과 감정에 대한 소통과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다. 타자의 마음과 감정은 그에게 이러나저러나 상관이 없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뫼르소는 친구가 되자는 레몽의 제안에 “그의 친구가 된다 해도 내겐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리 카르도나가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자 뫼르소는 두 번씩이나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녀가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묻자 뫼르소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하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한다.

다시 그녀가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결혼을 하냐고 묻자 뫼르소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 자신을 찾아온 변호사가 어머니의 죽음에 마음이 아팠느냐고 묻자 뫼르소는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고 대답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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