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일상 속의 자유로운 삶
상태바
진정한 자유…일상 속의 자유로운 삶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3.27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전 인생수업]⑪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자유로운 삶을 위한 조건Ⅴ

[한정주=고전연구가] 그럼 이제 물어보자.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통해 엿본 ‘자유로운 삶’의 진실은 무엇일까.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진솔한 삶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먹고 싶을 때는 먹고 자고 싶을 때는 자고 사랑하고 싶을 때는 사랑하고 말하고 싶을 때는 말하고 소리치고 싶을 때는 소리치고 일하고 싶을 때는 일하고 춤추고 싶을 때는 춤추고 노래하고 싶을 때는 노래하는 삶의 자유이다. 이것이 바로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통해 깨달은 ‘자유로운 삶을 위한 조건’이었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9. P391)

그게 뭐 어렵냐고? 그럼 먹고 싶을 때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자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먹고 싶을 때 자유롭게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남자라면 배불뚝이 내 모습 때문에 먹고 싶어도 자유롭게 먹지 못하고 여자라면 날씬한 내 모습 때문에 먹고 싶어도 자유롭게 먹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배불뚝이 내 모습과 날씬한 내 모습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타자가 나에게 강요하는 내 모습일 뿐이다. 타자가 강요하는 내 모습 때문에 나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구속 때문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흔한 일인가. 불교에서는 고기와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않고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힌두교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것은 종교가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강제된 노동시간 때문에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는 노동자의 억압된 자유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인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어떤가. 거창하게 권력의 억압, 언론의 자유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억압의 기제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연장자나 선배나 상사가 자기와 다른 견해를 말해도 반대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듣고 있어야 하는 경우는 얼마나 흔한 일인가.

또한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혹은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혹은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나 흔한 일인가.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고 싶어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눈 밖에 날까 봐, 왕따 당할까 봐 눈치가 보여서 말하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이렇듯 우리는 일상속에서 너무나 흔하게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다.

카잔차키스가 일자무식의 그리스 민중 조르바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엿봤다고 한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이념과 사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삶’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삶이 자유롭지 않은데 이념과 사상의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념과 사상의 자유를 말하면서 정작 삶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그러한 자유는 말장난이요 개수작에 불과할 뿐이다. 삶이 자유로운데 이념과 사상이 무슨 대수인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갈망해야 할 자유는 ‘이념과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삶의 자유’이고, 우리가 투쟁해야 할 자유는 ‘자유로운 이념과 사상’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 그 자체이다.<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