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진실 vs 주관적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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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진실 vs 주관적인 진실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3.04.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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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생수업]⑫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덤불 속』…거짓과 진실 사이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한정주=고전연구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헤로인 블랑시는 ‘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해요.”

우리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블랑시의 말처럼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진실이라는 것이 개인의 생각이 배제된 진실, 즉 ‘객관적인 진실’이라면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은 개인의 생각이 개입된 진실, 즉 ‘주관적인 진실’이다. 누구나 ‘객관적인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 진실은 ‘주관적인 진실’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렇다면 진실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의문과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우리는 ‘주관적인 진실’을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다시 말해 우리는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덤불 속』은 이러한 문제, 즉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적인 것’인가 아니면 ‘주관적인 것’인가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일본 중세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이다. 소설은 어느날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산그늘 ‘덤불 속’에서 살해당한 흔적이 선명한 남자 시체 한 구를 발견한 나무꾼이 검비위사(檢非違使:범죄행위를 수사하는 검비위사청(檢非違使廳) 소속 관리)에게 사건 현장을 진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등장한 유랑 승려는 시체가 발견되기 전날 살해당한 남자와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이다. 유랑 승려는 검비위사에게 죽은 남자가 말에 탄 여자와 같이 세키야마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특히 유랑 승려는 죽은 남자가 무장한 상태 즉 칼도 차고 있었고 활도 갖고 있었으며 검게 옻칠한 화살통에는 스무 개도 넘어 보이는 화살이 들어 있었다고 기억한다. 또한 여자가 타고 있는 말은 “밤색에 하얀색이 섞인 갈기를 잘 깍은 말”이었다고 증언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죽은 남자를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악명 높은 도둑 다조마루를 붙잡은 방면(放免:범죄를 저질렀지만 풀려나 검비위사에게 협력하는 하수인)이다.

방면은 다조마루를 붙잡은 시각이 죽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기 전날 밤 초경 무렵이었다고 말한다. 방면은 당시 다조마루가 “가죽을 감은 활, 매깃이 달린 화살 열일곱 대”를 지니고 있었고 또한 “갈기를 깎은 적갈색에 흰 점박이 말”에서 떨어져 아와타구치의 돌다리 위에서 끙끙거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살해범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면서 다조마루는 “도둑놈들 중에서도 여자 좋아하기로 유명한 놈”이기 때문에 적갈색 말에 타고 있던 여자 역시 어떻게 했을지 알 수 없으므로 그것 역시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악명 높은 도둑 다조마루를 붙잡은 방면 덕분에 살해 사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을 무렵 죽은 남자의 장모이자 실종된 여인의 어머니, 즉 노파가 등장한다. 노파는 죽은 남자는 와카사의 국부 소속 사무라이이며 이름은 다케히로이고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라고 증언한다.

또한 실종된 자신의 딸은 이름이 마사고 나이는 열아홉 살이라고 밝힌다. 노파는 사위야 이미 죽은 목숨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해도 딸아이의 행방만은 꼭 찾아달라면서 다조마루라는 도둑놈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울음을 터뜨린다.

다케히로라는 이름의 사무라이 살해 사건은 붙잡힌 도둑 다조마루의 자백으로 마침내 그 정황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먼저 다조마루는 사내를 죽인 것은 자신이지만 여자는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잡아떼면서 “아무리 고문을 해도 모르는 걸 불 수는 없다”고 항변한다.

다조마루는 이미 붙잡힌 마당에 비겁하게 딴 소리를 할 생각은 없다면서 살해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행적을 진술하기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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