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ESG 규제 강화로 기업의 법률적 리스크 더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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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ESG 규제 강화로 기업의 법률적 리스크 더욱 커져
  • 이성태 기자
  • 승인 2023.05.2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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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ESG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이 공급망 차원의 ESG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수록 ‘부당한 경영간섭’ 규제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6일 발표한 ‘최근 ESG 해외소송과 기업 리스크 관리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최근 몇 가지 ESG 관련 해외소송 사례를 소개하면서 기업의 주의의무 위반 책임의 경계가 상당히 확대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폐선박 판매를 중개한 영국 기업이 선박해체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피해자로부터 소송을 당한 사례를 소개한 것이다. 해당 중개기업은 영국 항소법원에 자신은 피해발생에 직접적 관련이 없어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소송 자체가 각하돼야 한다는 소를 제기했지만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영국 항소법원은 최근 기업의 주의의무 확대 경향을 고려할 때 중개기업도 ‘위험의 생성’에 관여했는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있어 이 소송을 막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보고서는 이 소송은 기업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의 경계가 상당히 확대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태규 선임연구위원은 “이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영국 법원의 ESG 관련 기업 책임의 경계에 대한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고 강조하면서 “향후 최종판결에 따라 기업책임의 경계가 상품의 제조·판매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공급망보다 훨씬 확대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또한 모회사가 해외자회사와 그룹 차원의 정책을 공유하고 해외자회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시행한 경우 해외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영국 법원에서 모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가능하다(소송 관할권의 인정)는 영국 대법원의 판결을 소개했다.

이 판결은 회사법상 독립법인격을 이유로 해외 자회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모회사의 자동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하급심의 판단을 뒤집은 판결이다.

보고서는 ‘EU 공급망 실사 지침’이 요구하는 바는 ‘기업은 자회사는 물론 협력기업에 대해서도 ESG 리스크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영국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글로벌 규제에 충실할수록 피해 발생 시 법률적 책임은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고 진단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공급망 실사 지침을 충실히 준수해도 ESG 리스크가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지침에 따른 자회사·협력업체 관리·감독 행위는 법률적 책임의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고 우려했다.

한편 보고서는 그럼에도 글로벌 ESG 규제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해외시장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어 한국기업에게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세계적 규제변화의 추이는 순응하면서 기업은 ESG 관련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협력기업과의 강도 높은 ‘협력적’ 관계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ESG 규제는 그룹 내 리스크 관리에서 공급망 리스크 관리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이는 전사적 리스크 관리에서 범기업 협력적 리스크 관리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보고서는 ESG 리스크 관리의 성패는 지분관계가 없는 협력기업에 대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는 협력기업과 원청기업과의 ‘협력적’ 관계의 정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ESG 리스크에 대한 기업의 법률적 책임이 커질수록 협력기업에 대한 리스크 관리·감독의 강도도 강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해 협력기업은 ‘부당한 경영간섭’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규제당국은 ESG 리스크 관리와 경영간섭 금지 규제 간의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불확실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주요 대기업은 ESG 협력사 행동규범을 제정하여 협력업체와 공급망 차원의 ESG 리스크 관리를 실천 중”이지만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규범준수에 따른 유무형 비용이 너무 크다고 느낄 경우 규범을 회피하려는 인센티브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경우 ESG 리스크 관리의 강도도 더욱 강화될 것이고 이는 ‘부당한 경영간섭’을 금지하고 있는 국내 규제(하도급법, 공정거래법 등)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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