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락당(希樂堂) 김안로…안락 희구하지 못한 채 사사당한 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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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락당(希樂堂) 김안로…안락 희구하지 못한 채 사사당한 권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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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㉙
▲ 김안로의 글씨.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이숙(頤叔).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뜻을 함께 했다고 해서 유배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이 중종(中宗)과 장경왕후의 딸인 호혜공주와 혼인해 왕실의 맏사위가 되자 조정에 복귀해 권력을 남용하고 정적(政敵)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한 척신(戚臣)이자 권신(權臣)이 되었다.

그의 부친 김흔은 한양도성의 동쪽 남산 기슭에 ‘안락당(安樂堂)’이라 이름 붙인 집을 짓고 살았다.

김안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곳에 살면서 아버지가 취한 ‘안락(安樂)의 뜻을 희구(希求)한다’는 의미를 담아 다시 ‘희락당(希樂堂)’이라 이름을 짓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호에 새긴 뜻과는 다르게 장경왕후 사후 중종의 왕비가 된 최대 정적(政敵) 문정왕후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유배당한 후 사사(賜死)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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