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㉜
[한정주=역사평론가] 자(字)는 언진(彦鎭). 전라남도 담양 창평에서 태어나고 자란 양산보는 15세 때 한양으로 올라가 조광조의 문하생이 되었다. 17세가 되던 1519년 현량과에 합격했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해 뜻밖에도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가 전라남도 능주로 유배형에 처해지자 따라나서 유배지에서 스승을 모셨다.
조광조가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사(賜死)당하자 슬픔과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 소쇄원(瀟灑園)을 짓고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후 소쇄원을 중심으로 이종사촌 간인 면앙정 송순, 사돈 간인 하서 김인후, 석천 임억령, 사촌 김윤제,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과 교유하며 호남사림과 호남가단의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瀟灑園)은 인공적인 멋보다는 자연적인 멋을 중시했던 조선의 건축 미학과 정원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여기에서 ‘소쇄(瀟灑)’는 기운과 기상이 ‘맑고 깨끗하며 시원하다’는 뜻이다.
양산보가 자호로 삼았던 ‘소쇄옹(瀟灑翁)’이라는 호 역시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자연과 벗하고 살면서 맑은 기운과 호쾌한 기상을 길렀던 양산보의 삶과 철학에 들어맞는 호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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