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반시장적 국가주의 이념이라고?”…신자유주의의 협소한 왜곡
상태바
“사회주의가 반시장적 국가주의 이념이라고?”…신자유주의의 협소한 왜곡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5.03.17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유고슬라비아 수도였던 베오그라드. 현재는 세르비아 공화국의 수도다.

20세기 중반의 체제 실험 가운데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주의 모델은 세계적 경제학자들에게 ‘현존하는 가장 우월한 경제체제’로 일컬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본래 소비에트식 사회주의 체제 건설을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동유럽 지역과 마찬가지로 ‘스탈린의 가장 좋은 동지’가 되고자 했으며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과 반대되는 부르주아적 경제학이라며 신고전파 경제학을 배척했다.

그러나 1948년 소련 지도부가 유고슬라비아를 코민포름에서 영구 축출해버린 것을 계기로 유고슬라비아는 새로운 종류의 사회주의 실험에 나서게 된다.

유고슬라비아 당·국가 지도부는 1949년 노동자 평의회를 도입해 노동자 자주관리 체제를 실행했다. 또한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를 ‘보편적 인민 소유’로 전환해 국가를 사멸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경제민주주의 정책은 노동자 자주관리 체제와 맞물려 사적 소유도, 국가 소유도 아닌 ‘사회적 소유’라는 관념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탈중앙집중적 사회주의를 지향한 이들의 실험은 새로운 사회주의경제학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유고슬라비아 경제학자들은 연구여행, 서적 교류, 국제 학술회의 등을 통해 당시 막 출현하고 있던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화에 재빨리 참여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유고슬라비아 체제를 재해석해 이를 신고전파 경제학의 핵심 자리에 놓게 되었다.

이후 전 세계 학자들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유고슬라비아는 수십 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한 나라의 하나였다.

세계은행은 공식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체제를 하나의 성공으로 보았다. 1980년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서 유고슬라비아 모델은 좌절을 겪게 되지만, 이때도 유고슬라비아 모델의 추상적 버전은 여전히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고슬라비아는 노동자 자주관리, 탈중앙집중화, 시장,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등에 기초한 혁신적인 사회주의 실험을 이루었다.

유고슬라비아라는 작은 나라가 소련 국가사회주의와 서방의 자본주의 모두로부터 독립한다는 실험에는 무수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이에 대응해 국제적인 여러 동맹세력과 기구에 의지했다.

이때 신고전파 경제학은 유고슬라비아 경제를 묘사하고 발전시키는 도구이기도 했지만, 이는 또한 유고슬라비아와 다른 나라들에 사회주의를 도입하고 또 개혁하기 위한 청사진의 역할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유고슬라비아의 경제학자들은 정책 입안가들에게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전 세계를 자신들의 이론에 맞춰 변화시킨 셈이다.

신간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글항아리)은 사회주의가 반시장적 국가주의 이념이라는 주장을 근거 없는 낙인이라며 반박한다.

자본주의의 패권이 전 세계적으로 공고해지기 전까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각 사회 안에서 실질적으로 자유 시장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고, 그 가운데 20세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여러 정치 실험은 그 영감의 중추였다는 것이다.

저자인 조하나 보크만(조지메이슨대 사회인류학과 부교수)에 따르면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매카시즘이 종식되면서 냉전의 긴장이 완화됐고, 이때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동·서의 초국가적 대화는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근본적 중요성을 갖는 여러 기여를 가져왔다.

이념 대립을 이유로 한 국가적 통제로 인해 학술적 교류에 어려움이 컸던 당시 기묘한 동력으로 활성화된 이러한 교류의 장은 냉전 기류 속에서 ‘간극적’ 공간을 형성했다. 이 공간을 지배한 것은 마오쩌둥주의자들, 트로츠키주의자들, 시장사회주의자들,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여러 다른 형태의 좌파들이었다.

이 공간에서 학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과학적·역사적·철학적 지식을 창출하고자 했으며 사실상 신자유주의는 여기서 발전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을 저자는 ‘경계 없는 은하계’라 부른다. 이 ‘은하계’의 성원들은 어떤 주의라는 사고를 떠나 스스로를 개방하고, 그 열린 공간을 계속 유지하고자 했다.

1989년이라는 해는 많은 동유럽인이 오랫동안 추구했던 민주적이며 탈중앙집권화된 사회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열린 해였다. 하지만 1989년 이후의 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지형과 선택지가 근본적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학자들은 곧 엘리트들이 사회주의를 선택지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제적 엘리트들 그리고 각국의 권위자들은 권위주의적 형태의 협소한 신고전파 경제학을 통해 신자유주의라는 체제를 만들었다.

이러한 정치 지형의 변화로 사회주의 체제는 역사적 실패를 짊어졌고 ‘경계 없는 은하계’는 소실됐다. 이후 전 지구적 이념이 된 신자유주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추구했던 ‘자유 시장경제’의 이상을 정치적·권위적 이유로 제한해 협소하게 이해한 버전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현재 전 세계가 신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시장을 이상화하는 한편으로 국가나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심지어 사회정의와 같은 집단적 이상까지 비난하는 정치경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 등 네 가지 기준을 지지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을 모두 국가편 아니면 시장편으로 나누는 그릇된 통념은 경제학의 성격과 엘리트 권력의 성격을 애매하게 은폐한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시장, 중앙계획, 사회주의 모두를 분석적 도구로 사용한다.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를 통한 시장의 승리가 아니라 위계질서냐 민주주의냐라는 전혀 다른 축이다.

이들은 경제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지향하면서 시장을 옹호하고 국가계획을 거부하는가 하면 위계적 국가사회주의부터 국가자본주의와 대기업을 모두 비판하기도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위계적 기업과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지지한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럼에도 승리를 거둔 것이라 말해야 한다.

저자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거대서사를 넘어 20세기의 세계 그리고 현재를 바라보아야만 현재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바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