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漢書)』 이불과 『논어(論語)』 병풍…가난에 초탈했던 내면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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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漢書)』 이불과 『논어(論語)』 병풍…가난에 초탈했던 내면세계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19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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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로 본 일상의 가치와 미학㉟
 

[한정주=역사평론가] 몇 년 전 경진년(庚辰年: 1760년)과 신사년(辛巳年: 1761년) 겨울 내 조그마한 초가집이 너무나 추워서 입김이 서려 성에가 되고 이불깃에서는 와삭와삭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비록 성품이 게으르지만 밤중에 일어나 황급히 『한서(漢書)』 한 질을 이불 위에 죽 덮어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아 보았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얼어 죽어 후산(后山)의 귀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젯밤에도 내 집 서북쪽 모퉁이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등불이 심하게 흔들렸다.

추위에 떨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침내『노론(魯論 : 논어)』한 권을 뽑아 바람막이로 삼았다. 스스로 임시 변통하는 수단이 있다고 으쓱댔다.

옛사람이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특별한 경우에 불과하다. 금과 은으로 상서로운 짐승을 조각해 병풍을 만든 사람도 있지만, 이는 너무 호사스러워 본받을 것이 못 된다.

어찌 내가 천하에 귀한 경사(經史)인 『한서』로 이불을 삼고 『논어』로 병풍을 만든 것만 하겠는가! 또한 왕장(王章)이 소가죽을 덮고 두보(杜甫)가 말안장으로 추위를 막은 일보다 낫지 않은가!

을유년(乙酉年: 1765년) 겨울 11월28일에 기록하다.(재번역)

往在庚辰辛巳冬 余小茅茨太冷 噓氣蟠成氷花 衾領簌簌有聲 以余懶性夜半起 倉卒以漢書一帙 鱗次加於衾上 少抵寒威 非此幾爲后山之鬼 昨夜屋西北隅 毒風射入 掀燈甚急 思移時 抽魯論一卷立障之 自詑其經濟手段 古人以蘆花爲衾是好奇 又有以金銀鏤禽獸瑞應爲屛者 太侈 不足慕也 何如我漢書衾魯論屛 造次必於經史者乎 亦勝於王章之卧牛衣 杜甫之設馬韉也 乙酉冬十一月二十有八日記. 『이목구심서 1』

이덕무의 삶에는 가난이 숙명처럼 따라 다녔다. 자주 해가 저물도록 먹을거리를 마련하지 못했고, 추운 겨울인데도 방구들을 덥힐 불을 때지 못했다.

가난의 고통 중 가장 심한 고통은 추위와 굶주림이다. 그러나 이덕무는 젊은 시절부터 가난을 편안히 여겼다.

박지원은 그가 “평생 주변 사람들에게 ‘기(飢: 굶주림)’와 ‘한(寒: 추위)’ 두 글자를 결코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덕무는 『한서』로 이불을 만들고 『논어』로 병풍을 삼은 자신의 변통을 자랑한다. 해학과 기지 넘치는 묘사 속에 가난에 초탈했던 그의 내면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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