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으로 숨진 삼성전자 노동자 고(故) 황유미씨의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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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숨진 삼성전자 노동자 고(故) 황유미씨의 실화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2.0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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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약속', “아버지의 인생을 건 재판이 시작된다”

▲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택시기사 상구(박철민)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아버지다.

상구는 딸 윤미(박희정)가 대기업에 취직한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한편으론 넉넉지 못한 형편 때문에 남들처럼 대학도 보내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오히려 기특한 딸 윤미는 빨리 취직해 아빠 차도 바꿔드리고 동생 공부까지 시키겠다며 밝게 웃는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윤미는 큰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린 나이에 가족 품을 떠났던 딸이 이렇게 돌아오자 상구는 가슴이 미어진다.

자랑스러워하던 회사에 들어간 윤미가 제대로 치료도 받을 수 없자 힘없는 못난 아빠 상구는 상식 없는 이 세상이 믿겨지지 않는다.

상구는 차갑게 식은 윤미의 손을 잡고 약속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난 내 딸, 윤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씨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낯익다.

수년 전 각종 매스컴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던 삼성전자 광고의 헤드카피 ‘또 하나의 가족’과 오버랩된다. 바로 황유미씨가 일했던 직장이다.

그 직장은 황유미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도체 공장 1개 라인에서 팀장은 백혈병, 부팀장은 피부암, 동료는 림프종에 걸렸다는 젊은 엔지니어의 증언에도 산재를 감추지 위해 500만원을 제시하다 급기야 10억원까지 주겠다고 회유까지 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약속>은 ‘또 하나의 가족’을 배반한 직장을 빗댄 제목이다.

‘과연 이 소재를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속초로 황유미씨의 아버지를 찾아갔다는 김태윤 감독은 “대화하는 동안 그 분의 삶과 사연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면서 “꼭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황유미씨의 아버지가 인생을 건 재판에 뛰어든 지 6년만인 2011년 6월23일 서울행정법원 14부에서는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황유미씨의 산업재해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미국의 IBM에도 직업성 암,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있었고 당시 IBM은 노동자 수백 명에게 개인적으로 합의서를 써주고 보상했다.

다만 합의내용을 비밀에 부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산재법이 갖춰진 나라가 많지 않았기에 법원을 통해 직업병이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故) 황유미의 판결이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유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은 다큐멘터리나 사회고발영화가 아니다. 평범한 가족이 슬픔을 겪고 거대 기업과 맞서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다.

<또 하나의 약속>이 감동적인 이유는 세상을 떠난 딸과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각종 유혹과 협박에 굴하지 않는 아버지의 뜨거운 진심 때문이다.

그러나 고(故) 황유미의 산재인정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2014년 1월 현재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접수된 피해자는 151명에 이른다. 그 중 58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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