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의 오판과 탄금대 전투의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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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의 오판과 탄금대 전투의 패배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3.2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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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읽기]③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이 연전연패한 까닭은?
▲ 탄금대 전투를 그린 민족 기록화.

[한정주=역사평론가] 임진왜란 초기 조선이 일본군에게 연전연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군을 압도한 일본군의 전력과 조총을 앞세운 화력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전쟁에 대한 아무런 방비책도 마련하지 않았던 조선의 어리석음과 무능 탓일까?

물론 그것도 패전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유는 조선이 일본군의 전력과 전술을 전혀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전투 능력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손자의 말대로 ‘不知彼不知己(부지피부지기) 每戰必殆(매전필태)’, 적도 알지 못하고 나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로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첫째, 조선은 일본군의 병력과 화력은 물론 진법과 전술 등에 전혀 무지했다. 당시 조총이라는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의 정예군은 임진왜란 초기 병력과 화력에서 조선의 군세를 완전히 압도했다.

더욱이 일본군은 100여년에 걸친 내전을 통해 풍부한 전투 경험과 훈련은 물론 다양한 전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실전에 아주 강했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과 군부는 개전 초기 이러한 일본의 정예군을 이전부터 조선에 들어와 노략질과 약탈을 일삼은 왜구 정도로 취급했다.

둘째, 조선은 아군의 전력이 지닌 근본적인 취약함에 무지했다.

을미왜변(1555년) 이후 조선은 기존 진관(鎭管) 체제의 방위 전략을 제승방략(制勝方略) 체제로 바꾸었다. 제승방략 체제는 유사시 해당 지역에서 동원 가능한 병사를 한 곳에 집결시키고 중앙에서 파견한 지휘관이 부대를 통솔하는 방위 전략이다.

“장수와 병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야 승리한다”는 사실은 전쟁의 상식이다. 풍부한 전투 경험과 훈련으로 다져진 일본군과 평소 훈련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않았던 장수와 병사로 구성된 조선군이 실전에서 맞붙었으니 그 결과야 불을 보듯 뻔할 노릇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군은 일본군의 진법과 전술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일본군은 전투대형과 전술 구사가 매우 일사불란했다. 그들은 일단 조선군과 맞부딪치면 전방의 깃발 부대가 좌우로 갈라지며 포위했다. 그리고 뒤따르던 조총부대가 나서서 일제히 조총을 발사해 기선을 제압했다.

조총부대가 재장전을 위해 뒤로 물러서면 뒤이어 활과 화살로 무장한 부대가 나와 조선군을 공격했다.

이런 방식으로 일본군은 아군의 진형을 혼란으로 빠뜨려놓은 다음, 창병(槍兵) 부대를 진격시켜 살상하고 뒤이어 칼로 무장한 보병과 기병을 돌진시켜 섬멸 작전을 벌였다(역사신문편찬위원회, 『역사신문』 ‘조선 전기’, 사계절, 1996, p97 참조).

깃발 부대, 조총 부대, 활 부대, 창병 부대 그리고 보병과 기병의 전투대형을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신식무기인 조총의 화력을 극대화시킨 것이 일본군의 전술이었다.

이 때문에 개전 초기 조선군의 장수와 병사들은 진법도 없이 무작정 활을 쏘며 돌진하다 잘 훈련된 일본군과 조총의 화력에 처참하게 당하거나 놀라 도망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탄금대 전투…전술적 무지와 무모함이 빚은 참극

이러한 전술적 무지와 무모함이 빚은 참극의 대표적인 사례가 신립이 지휘한 탄금대 전투였다.

당시 신립은 조선 최고의 명장이었고, 군부의 상징이었다. 조정에서 한성 방어의 최후 보루인 조령(문경새재)과 충주 일대를 신립에게 맡겼던 이유 역시 그라면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주를 통과해 문경으로 일본군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신립은 조령의 험준한 자연 지형을 의지해 싸움을 할 것인지, 아니면 남한강의 탄금대에 배수진을 칠 것인지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그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일본군과 탄금대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기로 결심한다.

첫째, 그는 일본군의 주력은 보병이고 아군의 주력은 기병이므로 기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개활지(開豁地)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둘째, 일본군의 선봉대가 이미 조령 아래까지 와 있는 상황에서 고개 위까지 나가 진지를 확보하기 전에 일본군과 맞부딪히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셋째, 조선군의 병사는 대부분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신병들이어서 힘껏 싸울 수 있는 곳에 몰아넣지 않으면 자칫 사기와 투지를 잃고 전열을 깨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신립은 남한강을 등지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그는 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두 가지 핵심 요소에 대한 정보와 전술에 완전 무지했다.

즉 일본군의 주력은 비록 보병이지만 신식 무기인 조총 부대의 막강 화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탄금대의 지형이 서쪽과 북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남쪽은 수초가 무성하게 뒤엉켜 있어서 기병전술을 구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신립이 간과한 이 두 가지 사실이 탄금대 전투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종사관 김여물과 충주목사 이종장 등은 “왜군의 병력은 대규모이고, 아군은 훈련되지 않은 소규모 병력입니다. 정면대결보다는 조령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복병을 배치하고 협공하는 계책이 좋습니다.”는 주장을 했으나, 신립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신립은 탄금대를 장수대(將帥臺)로 삼아 서쪽과 북쪽으로 흐르는 남한강과 달천강을 등 뒤로 하고 동쪽과 남쪽의 논밭과 늪인 모시래들에 배수진을 쳤다.

마침내 결전의 날인 4월 28일 정오경 일본군의 왼쪽부대가 달천강 오른쪽 언덕을 따라 다가오고 중앙과 오른쪽의 부대가 탄금대 쪽으로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신립은 즉시 탄금대의 지휘소에서 제1진인 기병 천여 명을 출격시켰다. 이어서 다시 천여 명의 기병을 내보냈다.

그러나 서쪽과 북쪽으로 강이 흐르고 남쪽은 수초가 무성하게 뒤엉켜 있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아군의 기병은 제대로 돌진하지 못했다. 기병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조선군의 진영(陣營)이 깨진 기회를 틈타 일본군은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전투는 불과 두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판가름나버렸다. 뜻밖의 대참패를 당한 신립은 분한 마음과 당혹감으로 어찌할 줄 모르다가 결국 종사관 김여물 등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만다.

유성룡은『징비록』에서 임진왜란의 초기 전세를 어렵게 만든 신립의 전술적 실책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남겼다.

“왜적은 조령에 우리 병사들이 매복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척후병을 보내 여러 차례에 걸쳐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곳을 지키고 있는 우리 병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신바람이 나서 지나왔다고 한다. 훗날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을 쫓아 조령을 지나가다가 탄식하며 ‘이와 같은 천혜의 요새를 두고도 지킬 줄 몰랐다니, 신립은 진실로 부족한 인물이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본래 신립은 날래고 용감해 장수로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전투의 계책에는 모자람이 있는 사람이었다. 옛 사람이 ‘장수가 군사를 다룰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만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 듯싶어 자세하게 기록해 둔다.”

결과적으로 적에 대한 정보의 부재와 전투 현장의 지형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 탓에 조선군은 탄금대 전투에서 불과 두 시간도 넘기지 못하고 일본군에 대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탄금대 전투는 ‘적을 알지 못하고 자신도 알지 못한’ 무지가 총체적으로 얽혀서 빚어낸 참혹한 패배였다.

만약 신립이 조선군의 방위 체제와 전력이 지닌 근본적인 취약함을 이해하고 일본군의 병력, 화력, 전투력의 가공할 위력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있었다면 훗날 유성룡과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지적한 대로 개활지에서의 정면 승부 보다는 조령의 험한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 식 매복과 기습 공격을 구사해야 옳았다.

관군의 연전연패에도 게릴라식 매복과 기습 공격을 사용한 의병들은 일본군의 진격을 큰 곤란에 빠뜨렸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조정 관료와 장수들이 얼마나 적도 알지 못하고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 까닭에 패배를 자초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임진왜란 초기 연전연패는 일본군이 강한 탓도 있지만 정작 조선 조정과 군부의 무지와 무능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보아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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