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許蘭雪軒) 허초희…“서리와 눈 속에서도 맑은 향기 간직한 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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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許蘭雪軒) 허초희…“서리와 눈 속에서도 맑은 향기 간직한 난초”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5.04.01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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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자호(字號) 소사전(54)
▲ 난설헌 허초희의 초상.

[한정주=역사평론가] ‘목릉성세(穆陵盛世)’를 대표하는 천재 여류시인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가풍(家風) 덕분에 일찍부터 시문(詩文)에서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결혼 이후 여성을 천시한 사회적 환경 때문에 불행하게 살다가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평소 그녀의 재능을 아깝게 여겼던 동생 허균이 허난설헌이 남기고 간 시들을 모아 『난설헌집(蘭雪軒集)』을 엮은 다음 당시 여성에 대한 아집과 편견이 심한 조선의 사대부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조선에 사신으로 온 명나라의 문사(文士)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그들 중 주지번이라는 명나라 사신이 허난설헌의 시에 크게 탄복해 중국에 가져가 『허난설헌집(許蘭雪軒集)』을 발간해 큰 인기를 얻었다.

더욱이 18세기 초에는 그녀의 시가 일본에까지 전해져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조선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문학적 재능을 중국과 일본에서 먼저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녀의 당호(堂號)인 ‘난설헌(蘭雪軒)’은 차가운 서리와 눈 속에서도 맑은 향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난초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차가운 서리와 눈’이 신분에 대한 차별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가혹했던 조선의 제도였다면, 그 속에서도 ‘맑은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난초’는 그녀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남긴 ‘문득 감상에 젖어(感遇)’라는 시(詩)에는 ‘난설헌’이라는 당호에 담은 그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맑고 깨끗한 창 아래 놓인 난초(盈盈窓下蘭) / 가지와 잎 그렇게도 향기롭더니(枝葉何芬芳) / 서풍(西風)이 한번 스치고 지나가자(西風一被拂) / 서럽게도 가을 서리에 다 떨어졌네(零落悲秋霜) / 빼어난 그 자태 비록 시들었지만(秀色縱凋悴) / 맑고 깨끗한 향기는 끝내 가시지 않아(淸香終不死) / 문득 감상에 젖어 내 마음이 아파오니(感物傷我心) / 눈물 흘러 내려 옷소매를 적시네(涕淚沾衣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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